[동화로 보는 세상] 걱정 마, 우린 친구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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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사는 게 시들한 윌버에게 대단한 일이 일어난다. “내가 네 친구가 되어줄게”하며 샬롯이 다가온 것이다. 이 때부터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돼지 윌버와 영리하고 속 깊은 거미 샬롯의 우정이 시작된다.

윌버는 샬롯이 잔인하고 교활하게 파리를 덮치는 광경을 본 뒤라 새 친구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시들한 삶의 탈출구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샬롯은 뻔뻔스럽고 잔인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었다.

▶ 『샬롯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아기돼지 윌버는 거미 친구 샬롯으로부터 “근사한 돼지로 보이기 위해서는 공중 제비를 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라 몸을 뒤튼다.

미국의 대표적 동화작가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의 주인공 윌버와 샬롯의 우정을 돈독히 해주는 것은 어느 이야기에서나 그렇듯 눈앞에 닥친 위기상황이다. 위험한 일을 함께 처리하면 없던 우정도 생겨나는데 친구와 함께 위기상황을 넘겼다면, 그것도 친구의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면 그 우정은 두고두고 마음 깊이 새겨질 것이다.

윌버는 늙은 양한테 농장 사람들의 음모를 듣는다. 글쎄 크리스마스 즈음에 통통하게 살찐 새끼돼지들을 죽인다는 거다. 농장 사람들이 모두 가담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모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영리한 샬롯은 훈제 베이컨과 햄이 될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기적을 만들어낸다. “내가 벌레를 속일 수 있으면, 분명히 사람도 속일 수 있어. 사람들은 벌레만큼 영리하지 않으니까.”

정말로 샬롯이 거미줄로 만들어 놓은 ‘대단한 돼지’라는 글자에 온 마을이 벌컥 뒤집혔다. 기적의 거미줄에 씌어진 ‘대단한 돼지’를 구경하러 온 많은 사람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농장 일을 팽개쳐버린 주인 내외. 일요일에 교회는 만원이었다. 목사님은 거미줄 위에 나타난 글자는 인간이 언제나 기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라고 설교했다.

샬롯이 힘들여 써놓은 글자는 윌버를 대단하고 근사하기까지 한 돼지가 되게 했다. 여기에는 가장 현실적인 등장인물 템플턴의 덕도 빼놓을 수 없다. 템플턴은 자기에게 이익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쥐다. 윌버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다가도 먹을 것 얘기만 나오면 돌아서는 템플턴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윌버는 더 이상 훈제 베이컨이 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겸허한 돼지’를 끝으로 기력이 다한 샬롯은 마지막 역작인 알주머니를 놓고 눈을 감는다.
“너는 내 친구였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야. 내가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거미줄을 짰던 거야. 어쨌든, 어쨌든 말이야. 산다는 건 뭘까?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잠시 살다가, 이렇게 죽는 거겠지. 거미가 모두 덫을 놓아서 파리를 잡아먹으며 살기는 하지만, 알지 못할 게 있어. 어쩌면 난 널 도와줌으로써 내 삶을 조금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어느 누구의 삶이든 조금씩은 다 그럴 거야.”

윌버는 처음에 “잔인한 샬롯과 친구가 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우정이 아닐까” 하고 아주 잠깐 걱정한다. 물론 기우에 불과했지만. 위험한 우정이란 서로 잘 알지 못할 때나 선입관이 앞설 때, 주변의 시선이 개입될 때나 있을 법하다.

그런 점에서 그림 동화 『룰루』에 등장하는 늑대 룰루와 토끼 톰의 우정은 남들이 보기에 매우 위험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즐겁기만 하다. 한번도 늑대를 본 적이 없는 토끼 톰과 한번도 토끼를 본 적이 없는 늑대 룰루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간다. 『룰루』에서도 계기가 있다. 아저씨 늑대의 장례를 함께 치른 것이다.

그러나 깨질 위기를 겪지 않은 친구 사이가 어디 있겠는가? 새끼였을 때는 너나들이하면서 잘 지냈는데 자라면서 문제가 생겼다. 토끼에겐 이미 커 버린 늑대가 너무 무서운 것이다. 게다가 겁주기 놀이를 할 땐 얼마나 끔찍한지.

겁먹은 톰은 토끼굴로 들어가버리고 룰루는 그런 톰을 이해할 수 없다. 톰처럼 겁에 질려본 뒤에야 연약한 친구가 얼마나 무서워했을지 이해한다.

윌버와 샬롯 그리고 톰과 룰루, 겉으로 보기에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친구다.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사이가 된다. 이들은 친구 사이란 이래야 된다는, 질릴 만큼 누누이 들어왔던 경구가 거짓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려운 일은 함께 나누고, 둘 사이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면 그것은 각자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 지겹게 들어온 옛말이 참이라는 판정이 나는 순간이다.

정병규(어린이 서점 ‘동화나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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