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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이 시대 왜 김훈을 읽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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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아름답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그것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이다.그래서일까. 그가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적은 생명의 노래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소설의 죽음? 허튼 소리 말라고 야단치는 듯하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화장』이 주요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들어 있다. 소설가로서는 너무 늦은 나이인 50대에 등단한 그에게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평론가 박철화는 그에게서 우리 문단의 미래를 본다.

*** 김훈은 지금도 연필로 글을 쓴다

그의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한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추함의 반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이라는 말에 가깝다. 생명은 아름답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자연처럼 걸쳐져 있는 그것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김훈은 그런 생명의 노래를 있는 그대로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적는다. 그의 글은 그래서 창조가 아니라 채보(採譜)다. 노래는 『난중일기』에서, 또 『삼국사기』에서, 그리고 국토 여기저기의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왔다. 그것을 들은 대로, 또 자신이 해석한 대로 그는 옮겨 적는다. 이 노래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왜일까?삶에 대해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옳고 그름의 도덕적 꼬리표를 붙이려 한다. 하지만 그런 가치판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문화에 따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덕적 가치판단은 장식(裝飾)이다.

물론 어느 순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울 이유가 없듯이, 사람이 꽃보다 나을 까닭도 없다. 꽃은 꽃으로, 사람은 사람대로의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운명을 다하는 것, 김훈이 그리는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을 힘겹게 잇는 모든 생명의 움직임 말이다.

*** 삶에 대한 짙은 허무주의

그것이 힘겨운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의 근원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불완전하고, 그 생명들이 만들어가는 세계도 불완전하다. 폭력은 거기서 나온다. 삶을 위해 살육을 하고, 그 살육의 결과로 간신히 밥을 먹으며 살아남는다. 사람이 만든 율법(律法)을 어긴 자는 목이 잘리고, 그 율법을 지키려다 패배한 수천의 목숨도 칼에 베어져 피의 강물을 이룬다. 그런데 그렇게 승리를 거둔 자도 뼈와 가죽과 악취만이 남는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그 불완전함 자체가 폭력인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지만 진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훈의 노래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계를 공명(共鳴)한다. 그의 노래는 선과 악, 행(幸)과 불행을 담지 않는다. 마치 팔딱이는 먹이의 따뜻한 목을 물어뜯는 맹수의 눈빛처럼 무심하다. 자연을 닮은 그 무심함이야말로 진실의 차원에서 아름다운 것. 김훈의 노래는 그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우리 앞에다 불쑥 던져 놓는다. 이것은 냉소가 아니다. 무심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자의 비극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느 순간에도 흥분하지 않는다. 그와 알고 지낸 지 십수년이 흘렀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주 술이 그의 몸을 지배하는 순간에도.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어쩔 수 없이 허무주의가 배어 있다. 생명이 너나없이 불완전하듯 태초에도 폭력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아지는가? 어떤 면에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또 그렇지 않다. 노예제도가 사라지고 모두 자유인이 되어도, 잔인한 군주가 죽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도,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칼의 충정도, 악기의 순정도 그 폭력을 비켜가지 못한다. 사랑의 열정조차도 봄날 한순간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덧없다. 김훈은 그래서 집착하지 않는다. 아끼던 진돗개 ‘보리’도, 몸과 하나가 되었던 자전거 ‘풍륜’도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나보낸다. 그에게는 사랑이란 단어가 없다.

*** 당대의 풍속 세밀하게 묘사

여기서 김훈의 허무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영웅주의에 가 닿는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폭력을 수락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을 걸어감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반항이며, 폭력과 아름다움 사이의 이 역설이 그의 문학적 긴장을 이룬다.

이러한 점은 영혼의 차원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취재의 엄밀함이라는 물질적 형식을 갖는다. 김훈은 소설의 길에 들어서기 전 3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의 글은 ‘육하(六何)’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이 원칙이 그의 문학적 영혼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에 복원된 당대의 풍속과 기구, 그리고 전쟁의 풍경은 놀랍도록 세밀하다. 그 세밀함을 얻기 위해 작가는 아산 현충원과 남도의 바닷가, 국립국악원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또 그의 유일한 단편 ‘화장’은 인체에 대한 극사실 묘사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 문학이 오래 기억해야 할 자산이다. 『현의 노래』에 여전히 이어지는, 노쇠와 병약함으로 소멸해가는 인체와 관련된 지식은 자신이 교양강의를 나갔던 의과대학의 교수들에게서 직접 물어 얻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은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독자들의 실용주의와 그의 글이 행복하게 만나는 한 지점이다.

그런데 그 취재의 엄밀함은 그 자체로 의미의 건축물을 만들지는 못한다. ‘육하’ 없이는 사실도 없지만 ‘육하’를 모두 갖춰 놓아도 사물의 핵심은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중립적인 사실의 세계란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결핍이 있다. 그 결핍으로 인한 기갈을 메우기 위해 김훈은 주관적인 문장을 선택한다. 현실과 문장 사이의 거리, 그 불화를 견디는 것이 그의 문학의 출발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관적인 문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는 언제든 신문사를 때려치웠다. 내가 아는 한 그만큼 신문사를 들고나간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의 글은 기사처럼 압축돼 있으면서도 화려하고, 절제돼 있으면서도 섬세하다. 자기만의 문장을 가진 몇 안 되는 작가인 것이다. 문학적 엘리트주의와 언론의 대중 지향성이 만날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대중성이라는 마뜩지 않은 이름표를 달고 변방으로 쫓겨나갔던 역사소설은 김훈의 문학적 상상력의 사다리를 타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어쨌든 그는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진실 사이에서 손쉽게 문학적 낭만 속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장식적인 수식어를 걷어내고 세상의 근원을 파고 들어간다. 존재와 세계의 결핍과 불화와 폭력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다른 손에는 악기를 들고서. 한때는 걸어서 산에 올랐고, 요즘은 자전거로 들판을 누빈다. 그때 김훈은 몸이라는 가장 예민한 구체성과 생명이라는 추상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돌아와 글을 쓴다.

그런데 하루에 기껏해야 원고지 열장을 넘기지 못하는 그가 불과 두어 달 사이에 『현의 노래』를 다 옮겨 적었다고 한다. 기적 같은 일이다. 펜이 칼보다 약한 것임을 조금의 유보 없이 인정하는 그가 생명의 소리라는 혼돈을 헤쳐 나가는 문장의 버거운 걸음걸이를 그토록 서둘렀다니. 소설의 위기와 문학의 죽음이 입에 올려지는 이 시대에 그것만큼 놀라운 문학적 신비도 없다. 어쩌면 그것은 무서운 낭만으로서의 그의 운명이 아닐까? 혹시 그 때문에 올 봄 지중해에 함께 가기로 했던 약속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박철화(문학평론가)

*** 김훈은…

김훈은 상복이 많은 작가다. 50대에 등단해 첫 본격 장편소설인 『칼의 노래』로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더니 첫 단편소설 ‘화장’으로 ‘한국 문학사에 길이 기록될 대작’이라는 평을 얻으며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문단에서 유래가 드문 행보다.

소설에 앞서 매력적인 산문가로 먼저 이름을 얻은 그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휘문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산에 매료돼 전국을 누볐다. 66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가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접하면서 영문과로 옮겼다. 제대한 뒤에는 아버지(언론인이자 『비호』『정협지』의 작가 김광주)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워지자 같은 과에 입학한 여동생을 위해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그 뒤 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국민일보·시사저널·한겨레 등에서 27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다. 특히 한국일보 시절에 문학담당 기자로 필명을 널리 알렸다.

◆ 김훈의 작품으로는 독서 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이 있다.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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