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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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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이모부인은 최근 아들의 담임교사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동안『좀더 두고보자』던 학교측에서도『더이상 기다릴수 없다』는 강경방침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로 꼭 20일째. 그동안 갈 만한 곳은 죄다 찾아봤지만 모두 허사, 이제는 제발로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던 판에 학교로부터 자퇴서 제출을 종용받은 것이다.

<꾸지람에 끝내 반발>
『애 아빠가 원양어선을 타기 때문에 나 혼자서 애들을 키우는 셈이죠. 그래서 언제나 애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공부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렀죠. 그게 아이에게 지나친 부담이 된 모양예요. 저도 그동안 많이 반성했어요. 지금이라도 돌아와만 준다면…』이 부인의 눈물어린 호소다.
이 부인의 아들 K군의 가출 이유는 부모의 지나친 진학기대와 학업부진에서 오는 심적 압박. H고 2년인 K군은 1학기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5등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우수학생이었으나, 2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자꾸 떨어져 10등 밖으로 벗어나자, 공부에 의욕을 잃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이해와 격려보다 꾸지람으로 대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집을 뛰쳐나간 것이다.
『가출 전날에도 늦게 들어왔길래 왜 늦었느냐고 물으니 학교에 남아 농구연습을 했대요.
그래서 그래가지고 어떻게 대학에 가겠느냐고 혼을 냈어요. 그러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장롱에 넣어둔 20만원과 함께 애가 안보이더군요』
새벽 동트기 전 서울역 광장.
4시30분 여수에서 올라오는 전라선 밤차를 시작으로 약 2시간 동안 모두 8대의 열차가 도착한다.
서울역 앞에서만 20년 동안 가출소년을 상대로 일해 온 서울 YMCA 남대문 청소년 상담실 오복규씨(47)가 가장 바빠지는 것도 이때.
인파속에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있는 무작경상경 소년들을 오씨는 정확히 집어낸다.
요즘 오씨가 이 일대에서 매일 「처리」하는 가출자는 평균10명. 바야흐로 시즌에 접어들고있어 평소에 비해 3∼4명 정도 늘어난 숫자다.
80년도『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지난 79년에 발생한 가출 총2만3천1백90건중 20세미만은 절반가량인 1만1천5백51건. 처리지역별로는 서울4천1백94건, 부산1천7백14건으로 양대도시에서 전체의 51%를 처리해 가출의 대도시집중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경찰 또는 일부 사회단체에 의해 단속 신고된, 그것도 주로역·버스터미널 등의 극히 제한된 지역에 쳐놓은 그물에 걸려든것. 이를 빠져나간 실제 가출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그 누구도 알수없다.
그러면 왜 집을 뛰쳐나오는가? 지난해 서울YMCA가 처리한 1천7백37명을 원인별로 분석해보면▲가정과 학교에 대한 욕구불만이 5백51명 (31.7%) ▲가정결손4백89명 (28.1%)▲불량교우3백62명 (20.8%) ▲도시동경2백13명 (12.2%) ▲구직58명 (3.3%)▲허영49명(2.8%)순.
분석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가장 큰 문제는 가정. 관계전문가들에 따르면 종래에는 구직 또는 도시동경이 주원인이었으나 요즘에 와선 가정불화·결손가정등 주로 가정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대부속법원 정신신경과장 이근후박사는 『한마디로 청소년가출은 그 청소년이 속해있는 가정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부모는 자녀들이 만족할수있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주고, 대화와 설득이 통하는 따뜻한 가정분위기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 말했다.

<가정의 순화앞서야>
청소년가출은 가출 그자체도 문제지만, 더큰 문제는 가출 다음에 빚어질 결과로 지난 14일 남녀학생 13명이 서울 관악산에 천막을 치고 혼숙하면서 신림동일대를 무대로 전후 5차례에 걸쳐 1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쳐오다 경찰에 적발된 것은 그 한예다.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발생한 청소년범죄 8만7천3백78건의 80.1%를 차지한 학생·무직자들의 모두가 범행당시 가출상태였다는것. 그러니까 가출은 보다큰 비행의 시작이며 사전에 적절히 보호·통제되지 않을 경우 돌이킬수 없을정도의 큰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서일대 차경수교수 (교육학) 는 가출의 사회·교육적 측면을 강조, 『경쟁위주의 학교 교육과 사회적 규범의 결여때문에 우리 청소년들은 건전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고있다』고 비판하고, 『참다운 인간을 기르는 인격교육, 그리고 청소년들이 사회적 범죄의 유혹에 쉽사리 빠져들지 않도록 여가를 선용할수 있는 시설및 건전한 공동체의식을 함양해주는 교육·사회적 여건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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