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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에 다시 태극마크 단 이동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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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운의 사나이가 아니라 제일 행복한 축구 선수다"

이동국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그는 현재 프로축구 K리그 득점(11골)·도움(6도움)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1979년생으로 올해 35세. 이미 동기 대부분은 은퇴했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과의 거친 몸싸움에서 아직은 좀처럼 밀리지 않는다. 다음달 우루과이&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태극 마크도 다시 달았다. 국가대표팀 활약 기간만 16년 4개월. 필드 플레이어로서 최장 기간 태극 마크를 단 축구선수가 됐다. 2개월만 더 하면 골키퍼 이운재(41)가 지닌 최장기 축구 국가대표 활동 기록을 넘겨받는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 중인 그를 만났다. "아직은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른 아홉에 다시 국가대표가 되고, 마흔에 골을 넣는 것도 지금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고 '100골'을 기록했다.
"나도 잘 몰랐는데, 역시 언론사들은 기록을 정확히 찾아낸다. 사실 100골에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골을 넣을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퇴하는 날까지 골 기록을 계속 쌓고 싶다."

-올 시즌에는 K리그 득점왕도 바라보고 있다.
"욕심난다. 우리 팀 동료들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K리그 통산 200골 달성이 목표”

-K리그에서 몇 골이나 넣으면 만족스러울 것 같나.
"200골?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모르겠다."

이동국은 현재 K리그에서 165골을 기록 중이다. 35골을 더 넣으면 통산 200골을 달성한다. 지난 세 시즌 동안 평균 18골을 기록했으니, 이 추세라면 2년 후에는 가능한 목표다.

-사실 백전노장인데, 활약의 비결은 뭔가.
"조금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흔 다섯 살에서 10년 이전으로 돌아와 뛰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낼 수밖에 없다. 사실 어릴 때 주위의 시선이나 매스컴의 관심 때문에 많이 흔들렸다. 중심도 잡지 못할 나이에 실력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시기, 거침없이 뛰어야 할 시기를 치열하게 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지금 후회 없이 열심히 뛰고 싶다."

-태극 마크도 다시 달았다.
"최근 팀(전북현대)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재발탁의 기회가 왔다. 기회가 주어진 만큼 A대표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나보다는 대표팀을 위해 뛰겠다."

일찌감치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 이동국은 1997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A대표팀 상비군에 포함됐고, 프로 1년차 때인 19세에 1998년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후 청소년·올림픽·A대표팀을 오가며 '혹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뛰었다. 전지훈련·시범경기·국제 대회·리그 경기·올스타전 등에 쉼 없이 출전했다. 전 세계를 돌며 춥고 더운 기후에 적응해야 했다. 젊은 몸이었지만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당신에게 태극 마크는 어떤 의미인가.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선수라면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선수로 뛰면서 '국가대표는 이제 은퇴하겠다'고 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다. 실력이 되면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고, 실력이 못 미치면 어차피 선발되지 못한다. 집착이나 욕심은 아니다. 다만 대표팀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뛸 수 있는 한 항상 준비할 것이다. 또 대표팀에 목표를 둬야 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

월드컵 경기선 51분 뛴 게 전부
월드컵은 이동국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19세 나이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로 발탁돼 '깜짝스타'로 발돋움했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대표팀에 발탁됐다가 부상당해 낙마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이렇다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올해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대표 선수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경기에서 그가 그라운드에서 뛴 시간은 총 51분에 불과하다.

-브라질 월드컵은 특히 아쉬울 것 같다. K리그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는데도 선수로 발탁되지 못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했나.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새 감독이 부임하면 그가 원하는 전술이 있기 때문에 그 전술을 토대로 선수들을 선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것에 대해 주위에서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갔다는 그 자체, 그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그래서 아쉬움은 전혀 없다."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골도 넣고 맹활약을 했다. 그런데 본선에는 쏙 빠졌다. 혹사만 당하고, 정작 큰 대회에는 뛰지도 못했다.
"나는 많은 혜택을 본 선수이기도 하다. 1998년 월드컵에 출전할 때는 예선전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본선에 바로 갔다.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도움을 준 건 나로선 흐뭇한 일이다. 1998년 월드컵 예선에 못 뛰었던 것을 후배 선수들에게 갚아줬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부상당해 고생한 적도 있다.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은 안 들었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부상을 당하고 회복할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롱런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2회, 올림픽에 1회 출전했다. 월드컵도 뛰었다. 군 면제 기회가 정말 많았다. 그 숱한 기회가 다 날아갔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영표 형이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하는 바람에 아쉽게 무산된 적도 있다. 이른바 '이동국 군대가라 슛'이다. 그때 나는 '아, 군대 갈 운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보통 다른 선수들은 28,29세에 입대하는데, 나는 훨씬 일찍 입대했다. 그런데 군 제대를 하고 2개월만에 십자인대 파열을 당했다. 이 부상은 군 면제 사유가 될 정도다. 그 때 다시 떠올렸다. '나는 군대 갈 팔자구나'. 나는 정말 행복한 선수”

- '멘탈'이 강한 선수인 것 같다. 당신만의 '내상' 회복 비결이 있나.
"나보다 더 안 된 사람을 계속 생각한다. 한 달짜리 부상을 당했을 때는 '6개월짜리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상당히 마음이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비운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동의하나.
"아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선수다. 17년 동안 롱런하고 있는 선수다. 팬들의 사랑도 과분할 만큼 받았다. 이렇게 행복한 선수는 또 없다."

-2018년에는 러시아 월드컵이 열린다. 그 때 나이는 39세다. 출전 가능성이 있을까.
"없지는 않다. 체력이 받쳐주고 경기력에 문제가 없으면 된다. 하지만 1년, 1년 체력이 달라질 것이기에 집착을 가지거나 욕심을 내지는 않겠다."

'대표팀 애정남' 이동국의 또 다른 꿈은 태극 마크를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동국의 딸 재아(8)양이 최근 테니스를 시작했다. 그는 "공부하면 머리 아프다고 하던 애가 테니스는 눈빛을 내면서 한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언젠가 '테니스 김연아'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축구를 그만 두는 날, 15인승 차량을 사 다섯 아이(그는 딸 넷을 두고 있고, 현재 부인이 임신 중이다)와 놀러 다니는 것이 꿈이라며 활짝 웃는 이동국. 그는 오늘도 달리고 있다.

온누리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nuri3@joongang.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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