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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이대교수)|쫓아내듯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그만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가정주간을 기념하는 놀이가 한창일 때 TV에서 고궁의 모습을 담아 방영해 주었다. 카메라의 초점을 미아보호소로 하고 졸지에 엄마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표정을 담아 보여주었다. 겁에 질린 얼굴, 눈물을 흘리며 서있는 아이들, 마구 울어대는 애들의 표정도 가지가지라 안되었기도 하고 오랜만에 보는 이들의 표정에 새삼 아이들 문제가 생각났다.
아나운서 말에 의하면 어쩌다 엄마가 찾아오면 자기 잘못으로 애가 고생한 생각은 하지 않고 애들을 잡아끌고 욕설을 하거나 아니면 뺨을 때리며 끌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법원에 갈 일이 있어 그곳에서 목격한 일이다. 종합병원의 복도는 기다리는 환자와 그 가족들로 흡사 만원버스를 탄 것처럼 서로 비벼대며 서있었다.
어른들 틈에 끼여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작은 아이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 아이가 병이 나서 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젊은 아빠는 전혀 그 아이에게 무관심이다.
참다못해 애가 울기 시작하니까 주먹으로 애 머리를 쥐어박으며 조용히 하란다. 애는 울음을 참아가며 고통을 참고 서있었다.
이런 장면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골목길에서 트럭에 치여죽거나 오물통에 빠져 죽는 아이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라 해야겠지….
금년 들어 어린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 어린이를 위한 교육기관이 많이 생기는 모양이다. 교육을 전담하는 문교부 말고도 보사부에서 주관하는 어린이집·탁아소, 내무부에서 주관하는 새마을유치원, 시 교육위원회에서 관여하는 K그래이드(국민학교에서 하는 유치반)등 기존유치원의 몇 배의 어린이 교육기관이 생겼다.
우후죽순 격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지만 어쨌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동교육전문가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조기교육의 필요성은 불가피한 시대의 요청이므로 이것도 현대 교육의 추세라 하겠다. 그러나 교육기관은 유치원이건 국민학교건 하나의 제도이며 형식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아니다. 물론 교육내용을 담은 기관이기는 하나 사람들은 그 내용이 무엇이냐를 따지기 전에 제도 자체에 지나친 신임을 주는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애를 학교에 보내면 교육은 저절로 된다고 믿는다.
집안에서 쫓아내듯이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안심한다. 대체로 양심적이고 교육이 무엇인지 아는 전문가들이 교사직에 있기는 하나 아무리 훌륭한 선생이라도 어머니의 정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어렸을 때 그렇다. 교사는「루소」말대로 부모를 대신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교사에게 맡겨지는 것뿐이다. 엄마가 특별히 바쁜 일도 없으면서, 그리고 놀음에 빠져 애를 미아로 만들면서 유치원에, 유아원에 보내는 것을 자랑할 수는 없다.
글자를 한살이라도 앞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위해 좋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의 사랑과 정성이 빠진 어린이의 성장은 바람직할수가 없다.
모든 아이들을 국가에 소속시켜 특정한 목적을 위한 교육정책을 강요하는 나라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시민을 육성한다는 목표가 법으로 명시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되도록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 유아기에 충분히 주어져야 따뜻한 민주시민이 된다.
기관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교육의 올바른 인식이 아쉬운 요즘이다. 1900년을「아동의 세기」라고 외친「엘런·케이」의 말이 생각난다. 『어린이는 부모를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한다』고. 가정의 달을 보내며 새삼 되새겨보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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