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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5형제'와 이견 없었다 … 법관 보수·진보 구분 찬성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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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판사 6년, 법학 교수 24년, 대법관 6년. 퇴임 후 한양대 로스쿨 정교수로- . 법조계에서 양창수(62·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의 존재는 독특하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역사학도를 꿈꿨다. 그러나 일제 때 판사·변호사를 거쳐 해방 후 제주지검장을 지낸 할아버지(양홍기)의 뜻에 따라 서울대 법대로 갔다. 수석 입학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으나 6년 만에 돌연 대학 교수의 길을 택했다. 민법학 권위자로 꼽혔던 그는 2008년 9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법관에 발탁됐다.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 첫 대법관이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 차원이었다.

 양 대법관이 6년간의 외도(?)를 마치고 다음달 7일 퇴임한다. 그는 대법관 생활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대법원은 대단히 설비가 좋은 감옥”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901호 집무실에서 양 대법관을 이달 두 차례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그는 앞으로 민법 교과서를 쓰고 대법관 시절 겪었던 내밀한 경험도 책으로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서울대 법대 교수와 대법관 중 어느 쪽이 어려운가.

양창수 대법관이 지난 13일 집무실 서가에서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이 쓴 『법의 제국(원제 Law’s Empire)』 영문판을 꺼내 들고 있다. 그가 6년 전 설치한 서가는 책들로 빼곡했다. [오종택 기자]

 “법대 교수는 강의 같은 의무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할애할 자유가 있다. 반면 대법관은 자기 뜻과 무관하게 배당되는 사건들을 처리해야 한다. 대법관 한 명이 1년에 주심으로 처리해야 할 사건이 대략 3000건이다. 대단히 설비 좋은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나면 소송 당사자들은 달리 호소할 데가 하느님밖에 없다. 누구를 감옥에 보내고, 돈을 주라고 하고, 이혼하라고 심판하는 중대한 일이다. 압박감이 대단하다. 줄곧 법원에서 일해 온 분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자유를 뺏기고, 일 많고, 심리적 부담이 컸다. 사소한 사건은 걸러야 한다. 대법원이 중요한 사건 심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민법 분야 권위자여서 민사사건이 형사사건보다 쉬웠을 것 같다.

 “아니다.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사건에 대한 대법원 심리는 거의 전부가 사실 인정, 즉 증명의 문제에 집중된다. 오히려 민법을 전공했기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서 그랬는지 민사사건이 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실제로 사건기록을 통해 민사 분야에서 그동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많이 알게 됐다. 이해 당사자가 수백 명, 수천 명이 되는 재개발·재건축 사건이 많았다. 몇백억, 몇천억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도 적지 않았다. 내게는 지적으로 큰 도전이었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 통상임금 사건, 이혼 시 퇴직금 분할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선 어떤 입장이었나.

 “퇴직급여 분할 사건의 주심이었다. (분할해야 한다는 쪽으로) 전원 일치 판결이 났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사건에서는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있었으나 다수의견 쪽으로 갔다. 두 전원합의체 판결도 과거와 달라진 현실에 비춰 어떤 법리가 타당한지에 대한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 판결 이전에 입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들 아닌가.

 “그렇다. 법원은 현재 존재하는 법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사회적 이해 충돌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적정한 타협점을 찾아 신속하게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회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객관적 룰을 만들고 사정이 바뀌면 새로운 룰을 만드는 순환 과정이 원활해야 하는데 그런 선순환이 부족해 아쉽다.”

 - 전원합의체 합의 과정선 어떤 일이 벌어지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합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돼 있다. 전원합의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을 겪었지만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합의 과정을 보면 우리의 사회적 양상이 얼마나 다양해지고 숙고를 요구하는 단계에 왔는가를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물이 나도록 논의하고 또 논의한다. 한 번에 끝내지 못하고 같은 사건을 여러 차례 다루는 일도 빈번하다.”

 - 그러다 보면 대법관들 사이가 멀어지기도 할 것 같다.

 “의견이 다르면 상대방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전원합의가 끝나면 저녁 자리를 함께하며 술도 한잔씩 한다. 앙금을 남기지 않으려는 뜻이 있지 않은가 추측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들은 형제다.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사람을 흉보는 얘기는 하지 못한다. 나중에 대법관으로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낼 계획이다. 남다른 경력을 거치게 된 내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하다.”

 - 다양한 배경의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여러 여건상 직업 법관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분도 필요하다. 단순한 인적 징표 차원의 다양성에 머물러선 안 된다. 남성들만 있으니 여성이 있어야 하고, 어느 지역 또는 어느 대학 출신이 발탁돼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건 우수한 법률가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들이 다양해야 한다.”

 - 대법관들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시각을 어떻게 보나.

 “보수·진보, 좌파·우파 법률가라는 구분을 강조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기본문법이 집단주의다. 가족·기업·회사·나라·민족 등 집단 가치에의 동조를 앞세운다. 하지만 법의 기본정신은 개인의 독립성·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법을 자유주의적으로 보느냐, 사회민주주의적으로 보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보다는 법을 제대로 실현하느냐의 의미가 열 배는 크다.”

 - 진보·보수 성향 대법관 간에 판결의 편차가 있는지 궁금하다.

 “구체적 사건을 놓고 보면 두드러질 정도의 차이는 없다. 제대로 된, 우수한 법률가라면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 5명을 지칭하는 이른바 ‘독수리 5형제’라는 분들과도 일했지만 의견이 다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르다고 해도 이념보다는 법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게 솔직할 것이다.”

 - 평소 견지해 온 철학이 있다면.

 “원칙의 중요성이다. 법에 따라 계약을 하고도 막상 분쟁이 생기면 봐달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계약 체결 당시의 사정도 잘 따져 봐야 하고, 정도(程度)의 문제도 있다. 봐주는 쪽으로 가면 오히려 약자를 비겁하게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교수, 대법관으로서 보람을 느꼈던 때는.

 “교수 때 논문집을 총 9권 냈다. 그중 1~6권 수백 질을 법원이 2002년께 구입해 일선 법원에 배포했을 때 기뻤다. 교수로 있으면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종전 판례를 전원합의체 판결로 여러 건 바꾼 것도 보람이 컸다. 판례는 그 구체적 사건의 맥락을 넘어서 적용돼서는 안 된다.”

 - 존경하는 우리나라 법조인은.

 “해방 이후 법조계 인물 랭킹을 들자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을 선두에 꼽는 분이 많다. 강직한 성품으로 건국 초기 법률가들의 도덕적 기틀을 세우셨다. 제 할아버지가 일제 때 경성전수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의 전신)를 다녔는데 김병로 선생에게서 직접 배웠다고 한다. 김앤장의 김영무 변호사도 존경한다. 판검사 등 공직이 선호되던 시절에 선견지명을 갖고 프라이빗 섹터(민간영역)에 천착해 국제적인 법률사무소를 키워냈다.”

 - 퇴임 후 계획은

 “한양대 로스쿨로 갈 계획이다. 지금까지 개별 문제 연구에 몰두했다면 이제 민법 분야에서 전체를 조감하는 학문적 체계서, 교과서를 쓰고 싶다.”

글=조강수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카뮈 좋아하던 ‘문학청년’… 책 사 모아 집무실은 작은 도서관

양창수 대법관의 집무실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2008년 대법관에 취임하면서 부속실 공간을 책방으로 개조했다. 벽쪽에는 큰 책장이, 나머지 공간에는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대형 책꽂이가 5줄로 놓여 있다. 서가에는 이름도 생소한 독일의 모르(Mohr) 출판사 발간 법학연구서 시리즈, 대법원 판례집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전공 서적은 사실(私室)에 둬 찾기 쉽게 했다. 그의 법학적 사유의 산실이다.

 -장서가 얼마나 되나

 “권수를 세어 본 적이 없다. 6년 전 대법원으로 오면서 일할 때 필요한 것을 가져왔다. 대법원 창고와 집 창고에 150박스가 더 있다. 이거 정리하는 게 제일 큰일이다.”

-책의 의미는

 “지적인 각성제다. 법이라고 하는 것이 창조적 작업의 측면이 많다.”

-언제부터 모았나

 “1985년 서울대 강사로 갔는데 도서관에 가니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았다. 당장 글(논문)을 써야 하는데 답답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책을 사 모았다. 당시 도서관에 책을 비치하라는 요구를 많이 했다. 그 시절 현대아파트 한 채가 10억원, 한 동이면 1000억원대였다. 그거 한 동만 있으면 서울대에 부족한 자료가 없을 텐데 왜 안 할까. 국가 경영전략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창시절 ‘문학청년’이었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 중국의 노신을 좋아한다. 논어(論語)는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면이 발견되는 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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