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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씨의 소설 『하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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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달의 소설 중에는 이문열씨의 『하구』(한국문학), 전상국씨의 『외단길』(문학사상) 이청준씨의 『다시 태어나는 말들』(한국문학), 정연희씨의 『소리가 짓는 둥지』(문학사상), 호영송씨의 『흉금』(한국문학) 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수준 작으로 지적됐다 이문열씨의『하구』는 안개 자옥하고 갈대가 우거진 강의 하구를 배경으로 하고 인생에 한번 패배를 맛본 사람들이 모여 겪는 좌절과 재생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이 속에서 삶의 진실과 허위를 지켜본다.
좌익활동을 하다 피신해와 숨어사는 서 노인, 일본밀항에 실패하고 주저앉은 선주들, 별장의 남매는 각각 체념한 자와 재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를 대조시키면서 에피소드로 처리되고 있다.
「나」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이들과 접하게되고 이들의 경험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을 더 높은 단계로 전개시키려한다.
이씨는 또 이 소설에서 개인의 변모파경을 통해 그 당시(60년대 초)의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 하고있는데 70년대의 소설이 사회적 환경이 개인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도식을 보 엿 던 것에 비해 방향을 달리한 것으로 주목된다.
전상국씨의 『외딴 길』은 전씨가 추구해오던 가족제도와 혈연적인 끈이 어떻게 현대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나.
이청준씨의 『다시 태어나는 말들』은 『말속에 참다운 존재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이씨의 생각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이씨는 『언어사회학서설』 『살아있는 늪』 등을 통해 말에 관해 파고 들고있는 작가다.
한 젊은이가 음다에 관해 잘 알고있는 김씨란 사람을 찾아가 그의 말을 듣고 그 말의 본질과 나아가서 정신의 본질을 알려고 한다.
젊은이는 그 과정에서 진실한 말은 인간이 누구 나가 가지고 있는 한과 원을 용서로 풀어 나가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정연희씨의 『소리가 짓는 둥지』나 호영송씨의 『흉금』은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정씨의 주인공은 비생산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의해 자기존재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자기세계를 찾기 위한 열쇠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호씨의 주인공인 청년은 자의식 때문에 주위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몰락해 버린다. <도움말 주신 분(무순)="김치수·조남현·권영민">

<작가와의 대화>자기자신을 일찍 소모시키지 않고 오래 쓰는 작가 되게 노력
79년 『한하곡』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문열씨는 중편 『사람의 아들』 『그해 겨울』 등을 계속 내놓으면서 3년만에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영역을 단단히 굳히고 있다.
『등단초기에 이것저것 많이 써서 자신을 일찍 소모시켜버리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이 레퍼터리가 다양한 작가라고 이씨를 평하고 있고 중진 소실가중에서도 여러 사람이 『이문열은 오래 쓸 수 있는 작가』로 기대하고 있어 이씨의 이 같은 말은 겸양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각광과 갈채를 받는 신인들일수록 이러한 겸양은 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그릇도 자꾸 채우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곧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 세상이치이므로.
이씨의 작품세계는 『사람의 아들』 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그해 겨울』의 싱싱한 젊음의 서정,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나타난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 추구 등 다양하다.
『나이에 비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성장해가면서 젊음의 그때그때 저를 불면의 방으로 몰아 넣었던 생각 등으로 파고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의 문체도 주제 못지 않게 다양하다.
예스러운 한문투, 유창한 산문 서두에서 사실적인 문체까지. 예스러운 문장을 그가 초동시절과 그후 낭인생활을 할 때 고향에서 가진 한문 교육의 영향이라고 한다.
『하구」는 자전적 소설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1년간의 이야기. 이씨는 이미 발표한『그해 겨울』과 앞으로 쓸 대학2년간을 내용으로 한 소설을 합쳐 3부작으로 젊은 날의 이야기를 완성할 예정이다.
이씨는 이 작품을 언젠가 다시 다듬어야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작품 속에 「나」가 잘 드러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
이씨는 요즘 보름에 한번 정도로 어쩔 수 없는 사무적인 일 때문에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그러나 아직 대구를 아주 떠날 생각은 없다.
이씨는 글쓰기가 몹시 힘들다고 한다.
작품 하나를 쓰고 나면 보통 보름이상씩은 펜을 들지 못한 다는것.
이런 때는 낚시를 하거나 조용한 절을 찾아가기도 한다. 술을 마시는 것도 다음 집필 을 위한 한 방법.
그의 『술은 내 문학의 꺾쇠』라는 말을 쉽게 풀이해보자.
『낚시를 하거나 조용한 절에 가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으면 술을 마십니다. 마시되 잔뜩 마시지요. 다음날 하루를 꼬박 죽은 듯이 잡니다. 그 다음날 일어나면 잡념이 사라져 있읍니다. 묘방이지요) <임재걸 기자>

<작품줄거리>「하구」
아무 목적도 없이 도시를 방황하던 열아홉살된 청년 「나」는 자신의 앞날을 대학 진학으로 개척하기 위해 그의 형이 살고있는 강진이란 하구로 찾아든다.
「나」는 이곳에서 형의 모래 배에서 모래를 실어내는 트럭운전사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일을 하며 공부에 몰두한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이곳에 흘러든 사람들을 만난다.
「나」가 만난 사람은 만나면 싸움질하는 두 사람의 선주와 넋이 나간 듯한 서 노인, 그리고 바닷가 언덕의 별장에 있는 두 남매다.
두 사람의 선주는 전과자와 밀항 실패자였다. 그들은 형제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으나 겉으로는 거칠다.
그들은 모래 배로 제법 재미를 보았으나 도시에서 몰려온 큰 업자들에 의해 망하고 그중 최씨는 위암으로 죽고 박씨는 혼자 버텨간다.
서 노인은 이 마을 찾아온 가족들에 의해 좌익운동을 하고 숨어 들어온 사람임이 밝혀진다. 서 노인은 이 하구로 들어올 때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폐병으로 고생하던 오빠와 「나」가 막연하게 마음을 주었던 누이동생도 하구를 떠난다. 그녀는 부잣집 딸이 아닌 첩으로 밝혀진다. 「나」는 이 같은 사건의 와중에서 안개와 갈대울음 속에서 공부하여 대학에 합격하고 이곳을 떠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다시 강진에 들른다. 그는 이곳 ,친구가 끄는 대로 어느 술집에 들렀다가 황 마담이 된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가 그때 그를 사랑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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