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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스틴·나이트」씨 댁<55·회사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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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부분의 미국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 독립하려드는 경향이지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주는 미국식 교육과 전반적인 미국사회의 분위기가 그런 인격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4대째「워싱턴」에서 살아온「워싱턴」토박이「오스틴·나이트」씨(55)는 3남2녀의 자녀들이 모두 독립해서 나가고 부인「베티」여사(53)와 단둘이서 살고있지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장남「제퍼리」(31)와 차남「재리」(29), 그리고 장녀「낸시」(27)등 3명 모두가 결혼 즉시 따로 나가 살고 있다. 컴퓨터회사에 다니는 3남「리처드」(25)는 아직 미혼이지만 역시 독립해서 혼자 살면서 오는 6월에 있을 결혼 준비에 정신이 없고 대학1년 생인 막내딸「리너」(19)마저 대학기숙사로 들어갔기 때문에「나이트」씨 부부가 자식들과 함께 지내는 기간은 이미 끝난 셈이다.
현제「워싱턴」시내에서「히어링·에이드·센터」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나이트」씨는 전형적인 백 중산층에 속한다. 경제적으로도 아주 넉넉한 편이다.
조용하고 깨끗한 호숫가에 자리잡고있는「나이트」씨의 자택은 부부만이 살기에는 아까울 정도였지만 18세만 되면 성인으로 행세하는 미국사회를 그대로 반영이라도 하듯 부모 집에 의지해서 사는 자녀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자녀들간의 관계가 이상하다거나 어떤 불화의 요소가 개입돼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자녀들이 결혼하거나 직장을 얻어 독립하게되면 부모나 자녀들은 피차간에 서로를 간섭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 것이 미국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다.
「나이트」씨는『이 같은 독립현상이 뚜렷이 구별되는 시기는 대개 자녀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인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대학을 안 가고 더 일찍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들의 독립시기는 더 빨라진다.
맞벌이 부부가 50%에 육박하는 미국사회에선 어린 자녀를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는 제도가 극히 보편화 돼 있다.
대 소변을 잘 못 가린 어린이들은 엄격한 애보기로부터 이에 상용하는 벌을 받기가 일쑤고 아기자기한 엄마의 사랑을 받는 대신 억센 아이들 틈에서 살아 남아야하는「생존의 기술」을 일찌감치 터득하게 마련이다.
미국백화점 같은 데를 가면 엄마의 손에 이끌려 따라 온 3∼4세 된 꼬마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기를 쓰고 우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러나 미국부모들은 일단 자기자식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울고불고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많은 손님들의 시선을 끄는 일시적인 창피보다는 자식의 버릇을 고쳐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립심과 책임감을 중시하는 점은 학교교육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교사들은 숙제를 기일 안에 해오지 않는 학생에게 기일을 연장해주지 않는다. 일단 약속한날자애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에겐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더 큰 교육이라고 믿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와의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동양과는 아주 다른 독특한 양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몸에 배고 보니 백만장자의 아들이 시골햄버거가게의 종업원노릇을 하기도하고 고관대작의 노부모가 양로원생활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 수식임을 자처하는「나이트」씨는「레이건」대통령의 자녀들이 전화로 부모에게 통고 만하고 결혼식을 올린 것이 미국에서 보편화된 현상은 아니라고 말했다.「나이트」씨의 자녀들은 결혼이나 약혼 같은 중대사는 반드시 부모와 상의하고 부모의 의견을 참고로 한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가 배필을 정해주는 건 아니죠. 그러나 아이들이 데이트상대를 데리고 와서 부모에게 소개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나이트」씨의 자녀들도「어머니날」이나 성탄절 때는 가까이 사는 부모를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오지만 성장한 자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경우란 거의 없다.
「나이트」씨의 89세된 노모「엘리노」는 여사는 비교적 행복한 편이다. 양로원에 가겠다는 노모를 설득해서「나이트」씨의 누이가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양로원이나 노인아파트에 살면서 1년간에 고작 두 세 번 정도 자식들과 만나는 다른 많은 미국노인들에 비하면 8남매의 자녀 집을 교대로 방문하고 있는「엘리노」여사는 큰 낙을 갖고있는 것이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엘리노」여사가 국가에서 받는 월3백 달러 정도의 연금 중 일부를 기거하는 딸집에 생활비 조로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트」씨는 자녀들도 경제적 곤경에 처할 경우엔 항상 도움을 줄 준비를 하고있지만 『실제로 자식들이 부모의 도움을 청해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모두들 자신의 역경을 스스로 극복해 나간다』고 했다.
「나이트」씨는 이러한 현상은 미국인들의 몰인정에서 연유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자립과 책임감을 몸에 익혀온 환경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나이트」씨는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피차간에 마음이 편하다고 실토했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자식 아닙니까? 폭우가 몰아치는 날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다 큰 자녀들에게「운전 조심하라」는 부모의 충고가 그들에겐 잔소리로 들릴 것 아닙니까?』
껄껄 웃으며 얘기하던「나이트」씨는 갑자기 생각 난 듯『동양에선 노인과 부모를 공경 하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면서『생각해보면 어버이를 공경하는 동양인들의 풍습은 참으로 좋은 미덕인 것 같다』고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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