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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집권을 포기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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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노래 못하는’ 가수, ‘발연기’ 배우…. 이런 모순적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지는 오래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 더 보태야 할 게 있다. ‘정치 못하는 정치인’이다. 낯설 건 없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가수야 노래 대신 화려한 춤 솜씨를 보여줄 수 있고 배우는 가만히 있어도 ‘훈훈한’ 미모를 선사할 수 있지만, 정치 못하는 정치인은 짜증밖에 더할 게 없는 까닭이다.

 그런 정치인은 집권을 포기한 야당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집권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런 정치력 부재를 유권자들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네 제1야당이 딱 그런 모습이다.

 두 번의 대선과 두 번의 총선에서 연거푸 패하고, 다 이길 줄 알았던 지방선거·보궐선거에서 줄줄이 헛물을 켜고도 여전히 백성들 마음을 모른다. 볼륨 높은 강경 스피커에만 귀가 움직일 뿐, 깨알 같이 적혀 있는 민초들의 고충은 읽으려 하지 않는다. ‘민심 난독증 환자’라는 자조와 탄식이 그래서 나온다.

 잡는 손길 뿌리치고 거리에 나섰지만 정작 유족대표들은 여당과의 대화에 더 관심 있어 보인다. 깨버린 합의, 재합의와 함께 신뢰만 잃었고, 시민들의 변변한 눈길 한번 못 받은 채 공연히 불법만 저지르고 말았다. 수권 능력은커녕 집권 의지라도 있다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국민들의 싸늘한 외면 속에서 천막당사를 접어야 했던 엊그제 기억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거다. 이들에게 집권을 위한 영국 노동당, 미국 민주당의 변신 노력을 기억하라는 주문은 그야말로 불경을 들고 소를 찾는 격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의 아둔함을 걱정하는 건 유력한 야당이 없이는 국회가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하는 게 없는 여당이 못하는 야당 탓에 늘 승리하는 건 건전한 의회민주주의가 아니다. 최선 없이 늘 차악만 선택해야 하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왜 이리도 박복하냔 말이다.

 20세기 중반 영국 노동당 의원이었던 조셉 켄워시도 그런 걱정을 했다. 그래서 ‘계단 아래의 야당’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야당의 임무는 의사당에서 소란을 피우고 의장의 명령에 반항하며 관례를 무시하고 장관에게 욕이나 퍼붓는 게 아니다.” 그가 말하는 야당의 자세는 이런 거다. “관료세력 억누르고 세금 낭비와 국민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막고 외교상 어리석은 모험을 저지하는 게 곧 야당이 할 일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둘의 차이는 구분할 수 있을 터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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