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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미야마·노부오」씨 댁(42·언론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중견 기자인 「가미야마·노부오」씨(신산곤부·42·동경도다마시앵구)는 부인과 딸 셋을 거느린 이른바 핵가족의 가장.
삼 형제의 장남이지만 5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의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도찌기껜」(탁목현) 「가누마」(녹소)시에 사는 부모 곁을 떠나 계속 따로 살고있다.
고향에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한 아버지 도시오씨(신산준부·71)가 살고있지만 「노부오」씨 대신 동생 「다다오」씨(신산충부·37)가 모시고 있다.
전 전만 해도 장남이 부모를 모시지 않고 떠나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남 상속 제가 엄격한 일본에서 부모의 재산은 장남에게만 상속되는 대신 큰아들은 부모를 모셔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속제도도 바뀌어 모든 자녀들에게 똑같은 상속권을 인정한다.
통신사기자인 「노부오」씨의 경우도 그가 아버지를 모시지 않는데 대해 집안에서 아무 불평도 없다. 아버지 「도시오」씨는 동경으로 올라오라는 장남의 권유를 고향을 떠나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차남 「다다오」씨도 아버지를 모시는 대신 집을 물려받기로 묵계가 돼있다. 「노부오」씨의 가정은 전후 보편화된 핵가족의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대가족 제도의 붕괴와 함께 가장의 가부장적 권위가 무너지고 부자간의 관계도 크게 멀어진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할아버지·아버지가 가정에서 절대자로 군림, 자녀들의 교육·결혼 등 모든 문제를 주관했으며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몸에 배있었다. 「노부오」씨의 아버지 「도시오」씨만 해도 부모가 정해주는 신부와 결혼했고 학교교사가 되는 것도 부모의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전후세대인 장남 「노부오」씨는 대학진학은 물론 직장의 선택이나 결혼상대자까지 자신이 스스로 결정했다.
아버지에게 상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도시오」씨의 말대로 『시대가 바뀌었으니 아들의 결정을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쓸데없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추인을 한 것뿐이다. 아들 「노부오」씨는 자신의 결정을 『알려드린다』는 정도의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말하고있다.
부모의 권위와 권리가 줄어든 대신 책임이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자식의 결혼상대자까지 부모가 간섭한 반면 결혼을 시켜 살림을 내주는 것도 부모의 책임이었다.
일본에서 자녀를 결혼시키는데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아들의 경우 「유이노오낀」(결납금)이라 해서 50만엔 정도를 신부부모에게 보내야하고 예복 한벌 빌리는데도 30만엔 이상이 든다.
딸의 경우도 「하까마」(고) 대를 신랑 측에 보내고 가구·예복을 준비하는 등 큰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연애결혼을 하는 경우 「유이노오낀」 등 돈 드는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고 살림장만이나 방을 얻는 것도 본인들이 해결한다.
「노부오」씨 형제의 경우도 아버지가 예식장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쳤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해결했다.
부모들에게 기대지 않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노부오」씨의 부인 하사은씨(아좌결·4l)는 동경도내 문경학원의 감사로 나가고있고 동생 「다다오」씨 부인 라께꼬씨(무자·39)도 마을 유치원의 아르바이트 보모로 일하고 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등 생활에 바쁘기 때문에 「노부오」씨가 고향의 아버지를 찾는 것은 1년에 두 번 정도다.
부모·자식간에 정신적 유대를 상실한 일본의 가정은 어떤 의미에서 해체 과정을 밟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일은 가문의 지속을 위한 하나의 「사업」이었다. 그래서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할머니까지 이 「사업」에 참여했다.
전통적인 가정교육을 통해 자식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익힐 수 있었다.
지금의 부모들은 가정교육이 아니라 육아의 단계에서부터 자신을 잃고있다.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그 경험을 빌릴 수 있지만 부모를 떠난 아파트의 젊은 부부들은 아이가 울기만 해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최근 일본에서 육아노이로제로 자살하는 젊은 어머니가 속출하는 것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딸만 셋인 「노부오」씨의 핵 가정은 심각한 일을 겪지 않고 있지만 자녀들이 응석받이가 되고 부모 특히 어머니의 권위에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있는 우리 나라에서 일본이 겪고있는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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