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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7)제73화 증권시장(35)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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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한통운」 인수>
동명증권을 주축으로 대한통운주를 사들이기 시작한 매수세력은 증금주도 곁들여 사가면서 주가를 부추겨 차금이익을 보곤 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재미도 있었고 뜻대로 작전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되지만은 않았다. 가격이 올라야 보유주식을 팔아서 이식을 볼텐데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는 주식을 추가로 매수해야할 터인데 이미 재력에 비해 너무 많은 주식을 사들인 터라 더 살수도, 다시 팔 수도 없었다.
동명증권의 최준문씨(현 동아그룹 명예회장)는 진퇴양난에 빠져 큰 고민이었다. 필자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필자는 새로 인수한 삼보증권을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었을 때였다. 삼보도 어느 정도 매수 측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강 사장, 나를 좀 도와줘야겠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당시의 상황을 필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의 사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필자에게 증권업계의 문을 열어준 최 사장이었다.
어떻게든 도울 방법이 없을까? 당시 재정형편으로는 최 사장이 더 이상 통운주를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어떻게 해서든지 통운주가를 올려서 반대 매매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길 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글쎄요, 무슨 도리가 없는지 연구해 보겠습니다.』
『강 사장, 거래소 업무규정을 고치면 무슨 방법이 있다는데…. 14조2항을 고치면 된다는 거요. 강 사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최 사장은 심각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주위의 누군가가 뒤에서 「지혜」를 빌려주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요. 그 조항을 고칠 수만 있다면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서 생각해봤다.
그렇다. 이 규정만 고친다면 기세를 이용하여 주식을 더 이상 사지 않고도 값을 치켜올릴 수가 있었다.
당시의 결탁매매제도는 단일가격만을 형성시키는 제도였다.
동명 측은 불성일 때도 복수가격을 형성시키는 것은 모순이라며 당시 규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당국으로서도 찬반양측이 격론을 벌인 끝에 김영근 이사장은 매수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규정은 고쳐졌다. 동명증권은 새로운 백만 원군을 얻은 것처럼 밀고 나갔다.
여러 회사에다 무제한 매수주문을 내는 수법으로 시장을 매수 일색으로 바꾸어 버렸다. 주가는 기세로 상종가를 쳤다.
소위 돈을 들이지 않고 주가만 올리는 방법이었다.
동명증권은 또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어 장세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동명의 그와 같은 일방통행은 업계에 적지 않은 물의를 빚었다. 연일 회의가 열렸다. 고함소리가 회의장 밖에까지 터져 나가는 등 열띤 논쟁을 벌였으나 개정된 규정은 이미 효력이 발생된 것이어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 무렵 최 사장은 상당히 많은 양의 통운주를 매입하여 갖고 있었다.
이 때 통운주의 매수작전에는 또 한사람의 강력한 매수세력이 있었다.
한진그룹의 총수 조중훈씨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최준문씨는 단순히 차금이나 얻기 위해 통운주에 손을 댔다.
조중훈씨가 원래의 포부인 운송업을 장악하기 위해 손을 댄 것인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았다.
여하튼 조 사장은 통운주 매수에 나서 머지 않아 최 사장과 경쟁입장에 서게된다.
그러나 통운주의 주가가 계속 치솟는 바람에 조 사장에겐 힘에 벅찼던 것 같다.
거래소 규정이 매수 측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 사장이 노리던 차금수익은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결국은 최 사장은 유통주식의 50%를 소유하게됐다. 최 사장으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경매라도 되면 통운주를 모두 거둬들여서 경영권이나 차지하십시오.
앞으로 통운은 육상화물운송을 거의 독점할 수 있는 위치로 발전할 것입니다.
장래성이 밝다고 봅니다.』 최 사장은 무엇인가 결심하는 것 같은 굳은 표정이었다.
66년도부터 정부는 소유주식을 경매시장을 통해 팔기 시작했다. 66년에는 인천중공업·대한감업·대한중석·해공·한국기계 등이 경매됐다. 68년 상반기에는 대한통운주를 전량 매각했다.
당시 이 경매의 입찰업무 대행은 필자가 맡아했다. 1, 2차 경매에는 조 사장이 끼여있었다. 여기에서도 조 사장이 최 사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것이다.
경쟁자 없이 쉽게 낙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있던 최 사장에겐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조 사장과 직접 담판을 하든지 배후에서 영향력 있는 활동을 벌이든지 해서 양보를 받지 않고서는 늘어가는 자금부담으로 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번 뛰어보시지요.』
나의 조언을 듣고 최 사장은 열심히 뛰었다. 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결국 조 사장은 양보를 했다.
이 때 항간에는 최씨가 물자수송을 맡는 대신 여객운송업은 조씨가 맡아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했다는 묵계설이 나돌았다. 이 사건이 파동까지는 가지 않았다.
통운주의 책동전은 새로이 민간대주주로 등장한 최준문씨가 정부보유주식을 모두 인수하여 경영권을 장악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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