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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지만 위생·화재 무방비|우후죽순 음식백화점…그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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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먹는 장사만큼 안전한 것이 없다」「불황에는 먹는 장사만 잘된다」는 등의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최근 서울을 비롯한 부산·대구·인천 등 대도시 중심가에서는 즉석 서비스로 제공하는 수십 가지의 음식을 한데 모아 파는「음식백화점」이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미국·일본 등지에서는「푸드·서비스산업」「매뉴얼(방식)산업」또는「외식산업」으로 불리고 단순히 음식을 파는 사업이 자동차산업과 맞먹을 정도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구호를 앞세우고 우리나라에 등장한 음식백화점은 경영·판매·스타일 면에서 외식산업과는 거리가 먼「단순한 간이음식점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실상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식당이 말 그대로 음식백화점으로 면모를 갖추어 나갈 수 있을지, 혹은 거리의 포장마차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그 겉과 속을 알아본다.

<실태>
우리나라에 음식백화점이 처음으로 생긴 것은 지난해 9월, 서울 충무로 C음식백화점이 효시다. 물론 그전에도 신세계·미도파·코스모스·롯데쇼핑 등 백화점에30∼60평 규모의 즉석요리코너, 팔도진미매장, 스낵코너의 형태가 있었으나 음식 가지 수가 l백 여종이나 되고 또 각종 음료·술까지 곁들여 마실 수 있는 스타일로 확장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

<한달새 3배로 늘어>
앞서의 충무로 C점이 개장 직후부터 인기를 끌자 도심지에 소규모 빌딩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업종을 바꿔 음식백화점을 열기 시작, 올해 들어 3월초까지 불과 14개 업소에 불과하던 것이 한달 사이에 40여 개로 늘어났다.
서울시내에서의 분포를 보면 명동·충무로 일대에「일번지」「진미」「아리랑」「명동콜」등 7개, 무교동「로얄」「무교」등 2개, 을지로「우남」「칵데일썬」「청기와」등 5개, 종로·인사동의「신생」「그린·힐」등 2개, 청계천「아세아」「아리랑」「오가」등 5개, 갈월동·동자동의「금문」「남영」「진미」「제일」등 4개, 고속버스터미널 옆의「하이웨이」, 영동의「남서울」, 동선동의「영양사」, 신촌의「훼미리」, 사당동「그린·하우스」, 이밖에 미아동·홍은동·모래내 등 변두리지역 시장주변에도 10여개가 들어서 있다.
한 음식백화점에서 파는 음식종류는 한식·양식·중국식·일식 등 40∼50가지, 이밖에 분식과 각종 튀김류·술과 안주까지 합하면 1백 여종에 달하는 곳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달 10일 현재로 조사한 음식백화점 취급 메뉴는 무려 1백80종에 달했다.
음식값은 전반적으로 시중의 다른 음식점에 비해 싼 편이기는 하나 업소와 음식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종로 S음식백화점의 경우 최하 3백원에서 5백원짜리 라면종류만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바로 이웃에서는 1천5백∼2천5백원씩 하는 돈가스·새우프라이 등을 파는 매장도 있다.
평균치를 낸다면 국수류가 5백∼1천원, 만두류가 6백∼8백원, 양식 1천5백∼2천5백원, 백반·비빔밥 등 한식류가 8백∼1천원 정도.

<장점>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가장 큰 이점은 우선 빠르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전의 음식점은 주문한 뒤 대개 10분 이상씩 기다려야하나 음식백화점에서는「퀵·서비스」가 생명으로 거의 주문과 동시, 늦어도 2∼3분이면 음식이 나온다.

<주문과 함께 음식 나와>
이런 면에서 촉박한 시간 안에 끼니를 때워야하는 샐러리맨이나 하교길의 중·고등학생, 주머니사정이 좋지 않은 데이트 남녀들의 간단한 요기로는 안성마춤이다.
이와 함께 음식재료의 공동구입·중앙공급식 제조방식 등으로 인건비를 절감시켜 시중보다 20∼30% 싼값을 받는 것도 큰 매력. 3∼4명이 어울려 5천원이면 두 세가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술 한잔에 안주를 곁들인다고 해도 1만원 안팎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퇴근길의 인파가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추세이다.

<문제점>
겉으로는 대규모 단일매장을 이루고 있으나 행정 법규상 거의 대부분이 10평 미만의 간이음식점·간이주점으로 등록돼 있어 독립운영을 하기 때문에 10평 이상에 해당하는 대중·전문유흥음식점들이 의무적으로 갖추어야할「식품접객영업시설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선 매장마다 화기를 취급하여 한 음식백화점에 30∼40개의 가스판이 있어 화재위험이 그만큼 높은데도 소화기나 소화전 종업원들에 대한 소방교육 등에 신경을 쓰는 곳은 극히 드물다.

<위생지도 손길 못 미쳐>
환기에 대한 미비점은 음식백화점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이다. 50평 남짓한 실내에서 15개 업소가 한꺼번에 조리를 하게되면 매장 안의 공기는 온통 열기와 갖가지 음식·조미료·기름냄새로 뒤범벅돼 점심시간이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퇴근 무렵이면 음식점이 아니라 주방 안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매장경영>
건물소유지 혹은 임대주와 매장주간에 임대와 메뉴선정에 따른 말썽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음식백화점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임대료는 미아동·홍은동 등 변두리지역이 평당40만∼50만원 선으로 가장 싼 편이고 도심이나 요지, 길목에는 평당 1백20만∼1백50만원에서 최고 4백 만원까지 홋가한다. 그러나 임대료는 보증금 외에 건물소유자 측이 매장시설비를 멋대로 정해 사실상 권리금까지 얹어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평당 3백70만원까지>
지난 2월 개점한 종로 S음식백화점은 1층이 평당 2백50만원, 2층은 2백만원 선의 임대료를 받았으나 실제 보증금은 1백 만원 안팎이고 나머지는 시설비 명목으로 책정, 입주상인들이 『시설비가 평당 1백 만원이나 된다는 것은 임대자의 횡포』라고 비난, 지금까지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명동C음식백화점의 경우도 3층의 칵테일 코너가 시설비를 포함, 평당 1백70만원에 임대 됐으나『터무니없이 비싼 시설비명세를 내놓으라』고 업주측과 상인들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밖에 강남고속터미널의 H음식백화점은 4평반짜리 매장이 1천6백25만원, 평당 3백70만원 꼴이며 명동 J음식백화점은 2∼3평 남짓한 것이 9백50만원을 홋가하고 있다.
충무로 T음식백화점의 주류부에 매장을 갖고 있는 윤모씨(32·여)는『임대료뿐만 아니라 관리비·전기·수도값 등으로 건물주 측과 시비가 너무 잦아 정작 사업에는 신경 쓸 틈조차 없다』면서『업소위치나 취급메뉴에 따라 돈을 버는 곳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적자를 보면서도 엄청난 시설비·권리금 때문에 집어치우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종로 S음식백화점은 이밖에도 당초 매점계약을 할 때 건물주가 선정해준 메뉴가『불합리한 점이 많다』면서 개점 한달만에 임의로 조정, 매장끼리 중복된 음식을 팔게되는 바람에 상인들간의 싸움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매상·수지>
음식 백화점 가까운 곳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영업이 다 잘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있거나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 요기를 해야하는 역이나 터미널근처, 학생층의 고객이 몰리는 백화점 주변이 가장 좋은 길목. 이에 따라 임대료나 권리금도 차이가 많고 매장의 수지도 크게 달라진다.
유흥업소가 밀집되어 있는 명동·충무로·무교동 등지는 음식백화점에 관한 한 2급지로 떨어진다는 것이 상인들의 진단.
종로 S음식백화점에서 7평 짜리 만두코너를 부부가 함께 경영하는 백모씨(39)는『하루 3백명 안팎의 손님이 찾아와 15만원 정도의 매상을 올린다』면서『월 관리비13∼15만원, 인건비 50만원, 가스 10만원, 재료비·임대료(1천4백 만원)에 대한 은행이자 세금 등을 빼면 2사람 분의 월급정도가 겨우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만두가 잘 팔리지 않는 여름철을 앞두고 있고 마음대로 메뉴를 바꿀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충무로 T음식백화점3층 술 백화점 주인 윤모씨(32·여)는『지난해 9월 4평반짜리 원형매장을 평당 1백70만원씩 7백65만원에 들었으나 매장이 3층인데다 음식과는 달리 술손님은 단골이 아니면 찾는 경우가 드물어 적자 투성』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적자" 주장>
윤씨는『손님시중을 드는 종업원 2명을 두고있어 인건비 40만원, 수도·전기값 5만원, 관리비 4만원, 세금·투자비이자 등을 빼려면 최소한 월 매상이 3백만원 이상 되어야 하는데 요즘은 하루매상이 5만원도 안 되는 날이 많다』면서『그만두고 싶어도 권리금·시설비(평당 35만원)가 아까워 버티고 있으나 3층 10개 매장 중 2개 업소는 적자를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다』고 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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