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루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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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기의 복서 「조·루이스」가 갔다. 관록답지않게 그는 헤비급타이틀전을 관전한뒤 13일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죽음앞엔 챔피언이 따로 없다.
「알리」와「마르시아노」도 위대했지만 그는 더욱 훌륭했다. 13년간 25차례 타이틀방어의 세계최장수챔피언인 것이다.
그의 대전사는 영고성쇠의 인생파노라마 같다.
제1막은 1935년6월25윌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서 12대 챔피언인 「이탈리아」의 「프리모·카넬라」와의 대결이었다.
「카넬라」는 1m98㎝에 1백35㎏이 넘는 거인. 별명조차「맨·마운틴」. 「조·루이스」는 이 산같이 큰 사나이를 6회에서 세번 녹다운시키고 KO로 이겼다. 그는 21세의 젊은 나이로 이때부터 흑인의 우상이 되었다.
제2막은 l935년9월 역시「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맥스·베이어」와의 대전. 이미 『갈색의폭격기』라는 별명을 갖게된「조·루이스」였다. 그날 관중은 9만5천명. 기자만 1천명, 경찰이 2천명동원되었고 대결결과에대한 도박거래는 5백만달러를 넘었다. 경기는 4회에 끝났다. 역시 승자는「조·루이스」. 흑인들은 노예해방이후 최대의 기쁨을 만끽하면서「뉴욕」「할렘」거리를 차가다닐수 없게 쏘다녔다.
제3막은 독일의「막스·슈멜링」과의 대전. 22세의「조·루이스」는 조직적 두뇌를 가진 철권의 「슈멜릭」에게 6회에만 5번다운된 끝에 패했다. 이때 독일은「슈멜링」의 승리를 「게르만」민족과「나치」의 승리라고 선전했다. 「조·루이스」는 싫든 좋든 미국의 대표였다.
그의 챔피언 획득은 그다음해인 37년「제임즈·브래독」을 8회 KO로 물리침으로써 이루어졌으나 그 영광은 초라한 것이었다. 전세계의 극장들에선 그가「슈멜링」에 참패당하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되풀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의 설욕기회는 마침내 왔다.「나치」전성시대였던 38년「슈멜링」과의 재대결은 마치 양대국 미국과 독일의 대전을 방불케했다. 「조」는 1회2분4초만에 통렬한 KO승을 거뒀다. 2분동안에「슈멜링」은 4번 다운되는 참패였다. 이것은 「조」의 제4막이라해도 좋았다.
이후 49년에 무패로 헤비급왕좌를 스스로 물러났을 때 그는 제5막의 영원한 승리를 구가할수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조·루이스」는 50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링에 복귀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물러나 위대하지않은 보통인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의 제5막은 51년「로키·마르시아노」에게 8회KO패한 것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37세.
은퇴의 시기를 알고 깨끗이 물러날줄 알았던 그는「과욕」이라는 자만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 추악한 꼴을 보이고만 것이다. 어리석음을 한번으로 끝낼줄 아는 위인은 역시 드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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