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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하는 로버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로보트를 연구하던 어느 회사기술사원이 갑자기 사표를 제출했다. 과학소설에나 나오는 로보트라는 허깨비 연구자에게 더이상 월급을 줄 수 없다는 경영자의 호령 때문이었다. 2년전 일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작년에 로보트산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 나간 기술자들을 찾아 나서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같은 시기에 정부의 어느 공공연구기관에서는 로봇연구에 대한 지원자금을 송두리째 삭감함으로써 로보트연구자들을 천덕꾸러기로 취급했다. 로봇은 할 일없는 사람들의 장난감 놀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이 뿌리 박혀 우리 나라에서의 개발은 더욱 더디다.
현대중공업이나 기아산업은 생산라인을 따라 이동하는 로보트를 이미 고용했다. 손의 활동범위가 제한된 이 로보트는 폭죽을 터뜨렸을 때처럼 쏟아지는 불똥 속에서 까딱없이 용접작업을 해낸다.
대우중공업이나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이보다 더 개발된 플레이백 로보트를 부리고 있다. 일종의 지능로보트다. 손 뿐만 아니라 머리(지능)도 가지고 있어 주인이 지정해 준대로 손을 길게 또는 짧게 뻗어 물건을 집어 올린다. 이 로보트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작동하는 것은 내부에 장치된 LSI (대규모집적회로)가 기억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60년대의 산업로보트는 평균가격 2만5천달러로 8년동안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1시간의 고용비용은 4달러정도로 근로자의 평균 임금보다 다소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근로자의 3분의1정도 임금인 하루 5달러의 임금으로 24시간 일할 수 있어 실험실의 로봇이 기업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로버트 산업을 재빨리 기업화한 것은 일본이다. 1백40여개의 로보트 메이커가운데 톱을 달리는 「후지쓰·화낙」은 2차대전후 기술일본의 상징처럼 여겨왔던 「소니」의 신화를 완전히 허물어뜨린 회사로 세계 로보트시장의 약 50%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이 회사의 50엔 짜리 주식이 7천엔으로 폭등을 거듭한 것은 그 동안 막대한 기술투자를 해왔던 소형 컴퓨터를 이용한 갖가지 산업용 로보트개발에 앞섰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최근에 컴퓨터와 로보트만이 일하는 「작업자 없는 공장」을 만들어 또 한번 미국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용접과 조립을 까다로운 작업조건에서 거뜬히 해치우고 있는 로봇은 약 10만대로 이 가운데 6만 여대가 일본에 몰려있다.
미국·「유럽」등에서는 로보트가 블루칼러의 실업을 가져온다는 두려움을 앞세우고 있어 이 산업자체가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위험한 작업을 로보트에 맡김으로써 공장노동자의 인간성이 회복되고 생산성도 향상되는 위력을 만끽하고 있어 개발기술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은 지난 2월에 두발로 걷는 최초의 보행로보트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은 공상영화에서 본 로봇과 같이 팔다리를 구부릴 수 있는 관절이 있고 TV카메라로 만들어진 눈을 통해 인간보다 훨씬 더 먼 지점에 있는 물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 말하자면 시각·청각·촉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로보트는 인간이 안경을 썼을 때와 벗었을 때를 구별하지 못했으나 이번에 개발된 로보트는 이를 모두 식별하고 평면과 입체도 구별함으로써 산업부문에서의 활용도는 더 넓어졌다. 뜨거우면 손을 치우고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비켜 가는 새로운 지능 로보트의 출현으로 고도의 기능을 요하는 산업분야 뿐만 아니라 간호원·교통순경 역할도 맡길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스며 나온다면 지능 로보트가 먼저 냄새를 맡고 달려갈 것이다. 물론 연탄가스도 미리 맡아 위험신호를 보낼 수 있다. 이 로보트는 24시간 화물차운전도 해내게 된다.
우리 나라는 77년부터 KIST가 로보트 개발을 시작했으며 뒤이어 대우중공업과 금성통신에서 전자식 프로그램장치에 의해 기계에 구멍을 뚫거나 가공물을 완성시키는 수치제어장치를 작년에 만들어 냈다.
로보트산업의 초보적 단계인 수치제어 공작기계는 우리 나라에 약 1천5백대가 움직이고 있다. 이들 회사에서는 본격적인 로보트산업에 참여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시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로보트생산에 필요한 부품은 전부 수입해야 한다. 계측기등 감지기능을 가진 기계제작에 관한 학문이 3년전에 처음으로 도입될 만큼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이 분야에 손을 대고있는 업체도 없기 때문이다.
수입가격이 4만∼8만달러하는 로보트는 우리 나라에서도 사람보다 훨씬 노임으로 부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특히 정밀공업분야의 국제전광사등 일부 기업들은 불량률이 높은 생산라인에 로보트를 투입, 자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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