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객님 바쁘시죠~ 이동식 장터 여는 현대판 보부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지난달 30일 인천의 한 아파트 앞에서 주민들이 ‘찾아가는 한샘바스’를 둘러보고 있다. 한샘바스는탑차로 전국을 돌며 고객을 만나는 서비스다. [사진 한샘]

인천 연수구에 사는 박계식씨는 지난달 집 앞에서 변기 두 개와 욕조를 구입했다. 한샘이 운용하는 이동형 탑차인‘찾아가는 한샘 바스’ 에서다. 박씨는 “욕실을 바꾸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매장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집 앞까지 원하는 제품이 찾아와 반가웠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건물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소비자의 집 앞까지 찾아가 장터를 열고 제품을 판다. 온갖 잡화를 가지고 다녔던 옛 보부상과 흡사하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영업점 방문이 뜸하자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주 타깃은 매장이 없는 도서산간 지역이나 아파트가 모여있는 지방 도시들이다. 온라인으로 전자책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 탭온북스는 지난 3월 ‘이동식 북트럭’ 서비스를 시작했다. 2.5t 트럭에 3000권의 책을 실은 이동식 북트럭 한 대로 전국을 달린다. 강원 춘천·원주, 충북 청주, 전북 전주, 전남 여수·광양에서 책을 판매했고, 휴가철인 지난 8월에는 강릉 경포대와 부산의 해운대 등 여행객이 많은 곳에 자리를 폈다.

 유상렬 탭온북스 판매팀장은 “동네 서점이 자취를 감추면서 갈 곳을 잃은 고객들이 하루 수백명씩 북트럭을 찾는다”며 “한 번에 20~30권씩 사가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북트럭에서 판매되는 책은 하루 평균 100여권. ‘소규모 동네 서점이 사라진 곳에서는 오프라인 서점을 찾는 고객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온라인 서점인 탭온북스를 홍보하는 효과는 덤이다.

 계절별로 주력 상품을 바꿔서 가지고 나가는 것도 21세기 보부상의 장점이다. 청호나이스는 지난 5월 제품을 싣고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이과수 릴레이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동 전시장에 인기 제품을 싣고 나선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 물건을 담기 때문에 황사가 심한 봄에는 공기청정기와 화장품을,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여름에는 제습기와 얼음 정수기를 위주로 전시장을 배치했다. 지나가던 고객들이 얼음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거나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 마케팅 효과가 쏠쏠했다.

 식음료업계의 찾아가는 마케팅은 이미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된 사례다. 주류업체들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고객들이 모인 식당을 찾아 주문 고객에게 사은품을 주고, 해변가나 워터파크에서 임시매장을 열어 판매하기도 한다. 버드와이저는 8월 한 달간 서울 강남·신사·홍대 지역의 유명 맥주 전문점을 찾는 ‘바 어택 ’을 진행해 소비자들에게 맥주를 서비스한다. CJ제일제당은 7~9월 석 달간 ‘컨디션 헛개수 갈증해소 트럭’을 몰고 전국의 도심지와 휴양지를 찾는다.

 업체들의 찾아가는 서비스는 늘어나는 모바일·온라인 쇼핑의 보완재 성격이 강하다. 온라인 쇼핑의 규모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고객과의 접점이 줄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신한은행의 이동 점포 ‘뱅버드’나 NH농협은행의 버스형 이동 점포, 국민은행의 애프터 뱅크(오후 7~9시 운영) 등도 같은 경우다.

 한샘 바스사업부 최진호 이사는 “찾아가는 전시장은 고객 요구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며 “실험 단계라 6~7월만 운영했지만 육아 때문에 외출이 어렵거나, 오프라인 매장 방문이 어려운 고객들의 수요가 꾸준해 앞으로 방문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