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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요새 점점 할머니 닮아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7세기 영국 희극을 읽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요새 아이들은 통 버르장머리가 없단 말야. 어른을 어려워 할 줄 모르고. 우리가 젊었을 땐 안 그랬는데…』 학생들이 모두 재미있어 한다. 2천5백년전의 희랍 희극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고 했더니 더욱 크게 웃는다.
인류역사 이래로 기성세대와 새 세대는 이런 식으로 서로 비난하며 살아왔다.
2학년 학생이 신입생을 보고 『요새 애들은…』하는 것을 듣는다. 기성세대의 말투와 똑같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어른들의 언행을 물려받는다. 비평하고 비난하면서 모방하게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역사가 되풀이되는 지도 모른다.
우리 어머니는 무척 엄하게 우리를 키우셨다. 친구를 데리고 오면 그 아이의 가족사항을 다 캐낸 후에야 놀아도 된다, 안된다의 심판이 내린다. 그때 나는 분노와 수치심에 떨었다. 나는 이다음에 절대로 저런 어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했었다.
80이 넘으신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을 하신다. 아침에 나갈 때면 현관에 지켜 서서 몇시에 오느냐고 물으시고 늦을 거라고 하면 어디에 가느냐고 또 물으신다. 이러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50이 넘은 나에게는 솔직히 말해서 부담스럽다.
나 자신이 내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짐」어 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며 살고 있다. 필요없는 간섭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이 원치도 않고 나도 바쁘니까 웬만하면 자유분위기에서 키우려한다. 과잉보호나 과잉사랑이 성장에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아이들 친구가 왔다 가면 그 아이의 가정사정에 대해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우리 어머니가 40년전에 하셨듯이 앞에 놓고 질문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지능적이다. 저녁에 우리아이에게 간접적으로 빙빙 돌려가며 그 친구에 관해 알아보려고 한다. 『엄마, 알고 싶으면 솔직히 물어봐. 그렇지만 나는 그 아이 하고 사귀는 것이지 그 집안하고 친구 하는 것은 아냐!』 이 녀석이 벌써 눈치를 채고 한술 더 뜬다.
이와 같이 역사는 되풀이되며 점점 지능적이고 점점 전략적으로 변한다. 앞 세대가 해오던 일을 내가 그 자리에 서자 시정하기는커녕 진일보를 하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우리는 건국이래 선거와 관련된 너무나 많은 추한 역사를 기억한다. 의사당 안에서 벌어졌던 아찔아찔한 연극장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그 숱한 추태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선거때마다 당국은 공명선거를 다짐했다. 그것은 그 전번 선거에 시정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당선된 분들은 대부분이 세대교체를 한 새 얼굴들이다. 그야말로 새 시대를 이끌고 갈 새로운 인재들이라 할 수 있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이분들이 쏟아놓았던 그 많은 공약의 내용도 잘 모른다. 우선 『과거 선배들처럼 부정부패를 자행하지 않겠다』 고 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선배의 본을 받아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또한 『사보다 공을 앞세우고 열심히 일해서 우리나라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게 할 것을 맹세한다』 는 내용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과거의 그 어떤 선거때에 이런 맹세를 하지 않은 후보가 있었던가. 그리고 유세하는 과정에서는 빈말이 아니라 하늘을 걸고 진정 맹세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 의정사에는 숱한 오점들이 남아있는가.
우리 아이들이 내게 보내는 비판 중에 가장 뜨끔하게 느껴지는 것은 『엄마, 요새 점점 할머니 닮아가고 있어』하는 말이다.
유난히 춥고 길던 겨울이 가고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몸도 마음도 푸근해지는 계절이 왔다. 겨울은 죽음을, 봄은 탄생을 의미한다. 탄생은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준다. 봄은 젊은 세대의 계절이다. 자연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붐이 가면 여름을 보내줄 것이다.
새로 금 배지를 달 분들을 보고 『듣고 배운 게 그것뿐이니 별 수 있나. 과거 정치인을 꼭 닮아 가는군』하는 체념 어린 국민들의 한탄소리가 몇 년 후에 나지 않기를 비는 것은 나 하나 뿐은 아닐 것이다. <필자=이대문리대학장·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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