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곡의 자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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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5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농수산부문 계획안은 농어민소득증대에 주안을 둔 점이 평가를 받을만하나 몇 가지 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우선 이 계획안에는 주곡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의지가 결여돼 있는 듯 하다. 계획에 따르면 82년의 쌀 생산 목표량을 3천8백20만섬으로 잡고 매년 0.5%씩의 증산을 시도해 86년에는 3천9백만섬을 생산하겠다고 되어있다. 그 결과 모자라는 쌀은 매년 43만2천t(3백만섬)씩 외국에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수도작경지면적(1백22만ha)과 녹색혁명을 이룩했다고 자찬했던 농업기술로도 주곡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인했거나 자급의욕을 상실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농정 제1조는 주곡의 자급달성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공업화를 이루더라도 적어도 주곡을 자족하지 못하면 경제전반이 파행을 면할 수 없으며 뭐니뭐니해도 아직은 주곡이 농가소득의 주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 와서는 세계적으로 식량이 무기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안보의 차원에서도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해의 흉작으로 외미도입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이나 쌀대전으로 10억달러이상의 외화를 지출하게 된 것도 주곡자급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5차 계획의 첫 번째 목표가 농어민의 소득증대로 되어있는데도 주곡의 자급은 한마디도 언급된 바 없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농정의 중점목표를 주곡자급기반의 조성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명제다.
쌀의 경우, 국민 한사람이 연간 쌀 한섬을 소비한다는 것이며 이 계산에 따르면 80년 말 인구 3천7백45만명을 기준할 때 3천8백만섬이 필요 불가결한 생산량이 된다.
정부가 금년의 쌀 생산목표를 3천8백만섬으로 잡은 것도 이러한 근거에 따른 것이다.
과거의 신빙성 없는 농수산 통계는 4천만섬 이상을 생산한 때도 있다고 하나 그것은 완전히 과장된 것이었다는 것이며 실제로는 우리의 품종·경지사정 등을 감안할 때 최대생산능력은 3천8백만섬이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설명일 것이다.
그래서 농정의 역점도 쌀의 자급을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만성적인 외미의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구증가율을 극도로 억제한 연평균 1.4%로 가정한다해도 목표연도인 86년 인구는 약 4천1백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되며 그러면 쌀의 생산량도 아무리 소비패턴을 바꾼다하지만 4천만섬 이상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수산부의 계획안에는 3천9백만섬으로 나타나있어 해가 갈수록 주곡자급은 실현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가소득 증가책과 병행하여 쌀의 생산확대를 기할 농지보전 및 확충, 영농기술의 근대화 등이 강력하게 구현되어야 마땅하다.
비교우위논리로 따지자면 국내미가가 외국미에 비해 2배 이상 비싸므로 미작을 생산성이 높은 다른 농작물재배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는 이론도 성립되나 쌀의 자급은 반드시 생산비용만으로 따질 수 없는 특수한 조건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지난해의 대흉으로 쌀 작황이 2천4백66만섬에 그친 것은 분명 쇼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분발의 계기가 돼야지 이로 인해 주곡강산이 답보해서는 농정의 비전이 사라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농어민 소득증대만 해도 이 계획안에는 구체적인 대안제시가 결여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물론 농가의 유휴노동력을 농외소득기회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주곡의 자급을 포기하고 농외소득만 올린다고 농촌경제가 정상의 길을 걸을지 모를 일이다. 또 농외소득을 늘리려면 농촌공장이 많이 세워져야 하는데 이미 새마을공장에서 경험했듯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며, 공론이 되지 않도록 치밀한 계획이 짜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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