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한씨의 소설 「노천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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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달의 소설로는 박영한씨의 『노천에서』(문예중앙 봄호). 김국태씨의 『여름 밤 사나운 꿈』(한국문학), 오탁번씨의 『패배선』(문학사상), 손영목씨의 『오늘의 우화』, 서동훈씨의 『정 교수의 어느 하루』(이상 현대문학) 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수준작으로 지적됐다.
박영한씨의 『노천에서』는 원고지 1천장의 자전적 장편소실. 『머나먼 쏭바강』 『인간의 새벽』에 이은 그의 3번째 작품이다.
박씨는 이 작품으로 월남전의 체험을 그렸던 종전 작품세계에서 벗어나 그의 문학 세계를 넓히는 획기적 변신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은 옥죄어진 사회현실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월남전을 다룬 작품에서도 국가적 격변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자기존립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등장시켰던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작가의 주제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겠다.
젊은 청년 「나」는 끼니를 이어갈 길조차 없는 가난 속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좌절을 안고 사회 속에 던져진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 문학(시)을 하게되는 것만을 유일한 구원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현실은 주인공의 염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60년대 말의 경제개발계획은 산꼭대기에 사는 빈민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온갖 부조리가 횡행하는 현실에 주인공은 저항한다.
20대의 고뇌를 통해 비정한 외계와 자기각성을 시작한 인간내면과의 치열한 싸움을 보여 주려한 이 작품은 박씨가 시도한 붙임 글(작품의 군데군데에 읽기 힘들 정도로 긴 분량으로 나타난다)로 해서 더욱 절실해진다.
낯선 부호·음표·상호명 등이 뒤섞여진 붙임 글은 2중 3중으로 분열된 젊은 의식을 잘 표현하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오탁번씨의 『패배선』과 서동훈씨의 『정 교수의 어느 하루』는 대학교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패배선』은 어느 서양철학교수의 자살을 통해 지식인의 무력감과 좌절을 제시해 보인다. 학문에서 추구하는 세계와 자기의 현실 삶과의 부조화가 초래하는 비극의 과정을 파헤친 작품이다.
『정 교수의 어느 하루』도 교수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회의를 느끼는 고통스런 모습을 그렸다.
손영목씨의 『오늘의 우화』는 한 양심적인 군소 업자가 기업과 상대하면서 따돌림당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기업의 비리를 파헤쳤다.
김국태씨의 『여름밤 사나운 꿈』은 상징적인 소설이다.
오랜 가뭄 끝에 쏟아진 비는 홍수가 된다. 가뭄에서 자유를 찾는 사람들이 곧 비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도움말 주신 분="김윤식·박철희·조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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