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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비판적 기능 잃지 않아야|「제3세계연극제」참가 파 극작가「시토」씨에게 듣는다|대감 황석영<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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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0차례의 외국극단공연, 1·2차에 걸친「심포지엄」과「워크숍」등 화려하게 펼쳐졌던 제5차 제3세계연극제 및 회의가 22일 폐막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린 국제연극제로서 제3세계의 연극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이번 연극제의 총평을 연극평론가 한상길씨(성심여대 교수)로부터 듣고 이번 연극제에 참가한 폴란드 극작가「예르시·시토」씨와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황석영씨의 동서문학과 연극에 관한 대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3세계연극제 참가 차 서울에 온「폴란드」극작가「예르시·시토」씨(ITI극 작 분과위원장)와 70년대 이후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한 황석영씨가 자리를 같이했다. 20일 상오 「롯데·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극 작을 포함한 문학전반에 대해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문학은 어떠한 형태의 제약 속에서도 동시대인의 생활조건을 정직하게 반영해야 하며 그 비판적 기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황=우선「폴란드」작가들이 부딪쳐야 하는 특수상황은 무엇이며 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토」=18세기의「폴란드」는 나라가 1백50년 동안이나 3등분되는 어려움 속에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폴란드」국민을 하나의 개체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종교·언어, 그리고 문학이었습니다.
국민들에게 국가적「아이덴티티」를 불어 넣어 주는 존재로서「폴란드」작가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국민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했던 셈이죠. 이러한「폴란드」적 특수상황은 지금도「폴란드」작가들에게 다른 어느「유럽」국가 작가들보다도 국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하나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황=공산권에서 행하고 있는「작품의 사전검열제」밑에서「폴란드」작가들은 어떤 방법으로「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있는지요.
「시토」=현재「폴란드」에는 검열 국이 있어서 모든 저작물의 검열을 법으로 집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기준을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기 때문에 검열에서 오는 제약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정부보다는 자신의 양심과 독자를 의식해서 작품활동을 펼 수 있다는 점에서「폴란드」작가들은 운이 좋다고 할까요?
황=한국작가들의 경우 눈에 보이는 제약보다는 분단국가 나름대로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하나의 짐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었던 예술이 민중들에게 되돌려져 나름대로의 형태를 갖기 시작한 18세기 이후의 한국사회에 작가적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많은 작가들이 가면극·민속놀이 등 민중문화에서 작품의 뿌리를 찾고 있지요.
「시토」=한국작가들의 경제적인 상황은 어떻습니까. 특히 극작가들의 경우 작품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황=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가 20∼30여명을 제외하면 순전히 원고료 수입만으로 살 수 있는 문인은 거의 없는 편이죠. 특히 시인이나 극작가들은 교사·언론인·연출가 등 다른 생업을 가지고 있는 예가 대부분 입니다.
「시토」=「폴란드」의 경우 많은 극작가들이「드라마투르기」-한 극장에 소속해 있으면서 작품의 선택에서부터 배우선정, 연출에 이르기까지 공연전반을 총괄하는 사람-를 겸하고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 다른「유럽」국가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극작가의 생계수단으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연예술 자체를 위해서도 좋은 기능을 하고 있고 생활 때문에 졸작을 쓰는 일은 적어도 없으니까요.
황=「시토」씨는 시극에 관심이 많고 또 대부분의 작품이 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현재「폴란드」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 있습니까?
「시토」=전통적「로맨틱·드라마」인『폴로네이즈』가 현재「바르샤바」와「크라쿠프」두 곳에서 동시에 무대에 올려지고 있지요.
황=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여러 말씀 중에서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작가의「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로 뭉친다는「폴란드」작가들의 자세는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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