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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나서라" vs "정쟁 휘말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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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소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청와대 방향으로 날리고 있다. 이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사흘째 이곳에서 농성 중이다. [뉴스1]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 정국의 중심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들도 지난 22일부터 3일째 청와대 부근에서 농성을 하며 박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는 24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나설 사안이 아니다”며 거리를 유지했다.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이 담화와 유가족 면담에서 언급했던 약속을 이제 와 헌신짝 취급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 슬픈 농성을 하루속히 끝낼 수 있도록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달라”고 말했다. “농성이 연장될수록 얼마나 우리 사회가 붕괴돼 있고 대통령이 무능한지 보여 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질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기소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선 박 대통령이 나서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고 한다.

청와대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촉구한 면담 요구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나설 수 없는 이유가 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청와대 참모들에 따르면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 문제의 핵심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주는 방안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을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도 유가족들이 수사권·기소권 문제를 언급하자 “그게 효율적이겠느냐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경우의 정치적 파장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장 ‘유민 아빠’를 만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박 대통령이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나라가 온통 세월호 국면으로 다시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황과 대통령은 다르다”며 “교황은 유족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유족들을 만나면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유가족들을 만나면 뭔가 요구조건을 들어줘야 하는데, 재협상안 이상으로 양보하기도 쉽지 않고 면담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이번에 유민 아빠를 만나 주면 다음부터는 어떤 이슈든 간에 풀리지 않는 문제를 대통령과 직접 만나 해결하려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세월호특별법 정국이 장기화될수록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 대통령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한없이 지연되면 결과에 대한 부담은 박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일각에서조차 “교착상태를 풀려면 여당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 중 4선인 정병국 의원은 “야당에 떠넘길 게 아니라 우리가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신뢰를 줬어야 했다”며 “박 대통령도 유가족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미경 의원은 “특별검사 추천권을 유족에게 다 줘도 된다”며 “사법체계 혼란이 우려된다면 진상조사위원회를 법률가들로만 구성하는 대안도 있다”고 했다.

 여권에선 사태가 계속 해결되지 않는다면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9월 6일 이전에 박 대통령도 뭔가를 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취임 1년6개월을 맞는 2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직접 주재한다. 일각에선 세월호특벌법이 정국을 흔드는 이슈로 커진 만큼 우회적으로라도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언급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난국을 풀어 갈 해법을 내놓지 않는 이상 언급 자체가 더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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