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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순간만큼 바보가 돼도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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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강홍준
논설위원

김수현(10·경남 함양초등학교 5학년)양은 지난 학기 학교 친구들과 ‘에그머니’를 모았다. 학교에서 닭을 키워 얻은 에그(달걀)를 시장에 내다판 머니(돈)로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에 매달 3만원 이상 기부했다. 이 돈은 아프리카 친구들을 돕는 데 쓰인다고 한다. 이젠 마을에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갓 부화된 따뜻한 달걀을 드리는 ‘알드림’도 한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 부모님이 구호단체를 통해 인도 친구 라울을 도우라고 맺어준 걸 계기로 달걀을 팔아 나누는 일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얼마 전 직업 체험 테마파크인 ‘키자니아’가 올해 선정한 나눔왕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현이의 얘기를 듣게 됐다. 수현이를 포함해 나눔을 생활화한 아이들 10명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나눔의 시작 단계에서 부모님이 다리를 놨다는 점이다. 주말이면 식당을 하는 부모님과 함께 노인정 등을 찾아 급식 봉사를 하는 아이도 그 자리에서 만났다.

 나눔과 봉사를 하면 점수를 따고, 대학 가는 데 유리하다고? 혹시 그런 생각이 드는 어른들이 있다면 백일 때부터 나눔활동에 동참한 홍세인(2)양과 부모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란다. 세인이는 생후 백일이 되던 날 부모님이 만들어준 통장을 갖게 됐다. 가톨릭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월 1만원씩 자동이체가 되는 통장이다. 앞으로 세인이 어른이 될 때까지 평생 이뤄지는 기부의 시작은 이렇게 부모가 길을 텄다.

 “나눔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이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거라 믿어요. 훗날 아이가 자라 공부를 시작할 즈음, 우리 부부는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누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말이죠.” 세인이 부모가 이 재단에 준 기부 증서에 적힌 글이다.

 이걸 읽으며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여느 부모처럼 나 역시 자식에게 입만 떼면 공부를 얘기했다. 나눔과 봉사마저 시간을 채워야 하니 빠지지 말라고 했다. 심지어 너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라고도 했다. 모든 걸 유불리로 따지는 계산적 사고에 절어 살았다.

 세인이 부모 말처럼 자식이 공부를 잘하도록 부모가 돕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부모가 나눔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본을 보이는 데 한계는 없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얼음물 뒤집어쓰기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한 사람이 세 사람으로, 다시 아홉 사람으로 번지는 확산형 기부 모델이라고 한다. 가정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로부터 시작된 나눔이 세대를 이어 가도록 나눔 유전자를 내 몸에 새겨보자.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