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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감정낭비 막는 이혼소송 개편 바람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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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가정법원이 이혼소송 과정의 갈등을 줄이고, 이혼 후 사후조치에 충실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새로운 가사소송 모델을 개발해 시범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재판을 통해 이혼하는 이혼소송은 당초 부부 중 한 사람이 이혼을 원하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경우 선택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민법은 결혼의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모두 상대 배우자가 결혼을 파탄에 이르게 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밖으로 노출돼선 안 되는 비밀이나 상대의 약점까지 공략하고 비난함으로써 소송 과정 중에 극도로 갈등이 증폭되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상대 비난과 책임공방을 벌이느라 다른 가족을 증인으로 불러내 가족 간 불화를 심화시키는가 하면, 소송 중 폭력사태로 번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또 상대의 책임 증명에 전력을 기울이느라 이혼 후 자녀 양육의 계획이나 재산분할 등 사후조치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혼소송 후 재산분할 소송이나 양육권 소송 등 추가 소송으로 이어짐으로써 이혼으로 인해 당사자들이 겪는 정신적 피폐와 생활 곤란이 도를 넘는 경우도 많았다.

 새 모델에 따르면 이혼소송 시 기존처럼 상대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혼의 유책 유형을 객관식으로 체크하도록 하고, 청구 내용에 따라 소송을 통해 이혼만 할지, 양육권과 재산분할 등을 모두 처리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정도 손질로 이혼소송의 부작용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이혼율 1위를 기록할 만큼 이젠 이혼 과정의 관리도 주요 의제로 다뤄져야 할 때가 됐다. 이혼으로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와 증오심의 증폭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정서적 건강관리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혼이 늘어나는 세태를 되돌릴 수 없다면, 이혼 과정을 잘 관리함으로써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없도록 더욱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