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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일본의 역사 직시가 우선이지만 한국도 너무 고집스럽다고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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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 한일관계가 풀리려면 먼저 가해자인 일본이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장기간 일본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한국에 대해 너무 고집스럽다(stubborn)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본지의 객원 칼럼니스트로서 미국의 4대 싱크탱크 책임자들과 대담을 진행한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22일 “현재 한국 외교는 고차 방정식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 방정식을 풀 단초는 한일관계 개선이란 것이 싱크탱크 대표들의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미국 빅4 싱크탱크를 가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박 전 위원장으로부터 한국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그가 석좌교수로 있는 한국외국어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박 전 위원장은 워싱턴 내에 ‘한일 갈등이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이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것은 한미관계에까지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차원의 걱정”이라며 “특히 일본은 ‘한국이 이미 중국의 궤도에 올라가 있다’는 식으로 미일 대 한중 구도로 몰아가고 있으며, 미중관계를 대립과 갈등관계로 보는 데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아베 정권 출범 이후에 일본이 워싱턴에 한달 평균 3명 정도 사람을 보내는 등 전에 없이 로비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며 “한국 역시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야 하며, 미국민과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공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보다 앞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의 소위 고노담화 검증 시도는 자충수라는 시각이 우세했다고 박 전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워싱턴이 주목하는 것은 어쨌든 일본이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이는 곧 일본 정부의 결론이 고노담화의 신뢰성 훼손이 아니라 고노담화의 신뢰성 재확인으로 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의 진정한 정상국가화는 역사 직시와 반성이라는 벽을 넘어야 비로소 가능하고, 가장 많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국가 한국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일본이 어떻게 아시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겠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다”고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어 “우리는 미중관계가 조화로울 수록 국익에 보탬이 되고, 일본은 반대로 미중이 대립할 수록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역시 미중이 건설적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는 게 이익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함께 양극화 구도로 세계질서를 움직여갈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4대 싱크탱크 책임자의 중국에 대한 시각은 다소 엇갈리긴 했지만, 중국을 어느 정도 견제해야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은 일치된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듣는 여러 이야기와 제안들을 객관적으로 짚어봐야 한다”며 “워싱턴에서도 한중관계 발전은 지지하지만, 중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끌려가는 식의 흐름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전략적 인내’로 대변되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한계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박 전 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는 앞으로도 이런 강경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또 “전략적 인내의 맹점은 북한이 먼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기만 기다리는, 목표 시한이나 계획이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라며 “전략적 인내는 사실 ‘전략이 없어 인내하는 것’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런 상황일 수록 북핵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국이 주도적이고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대북정책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있어 자신감 있는 전방위 외교를 펼쳐야 하며, 이미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영상취재=최승식 기자

[사진설명]
1. 본지의 '미국 빅4 싱크탱크를 가다' 시리즈를 통해 인터뷰한 우드로윌슨센터 제인 하먼 소장. 하먼 소장은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로 참여해 대담한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했는데, 박 전 위원장이 선물로 준 부채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이다. 그의 며느리는 한국인으로, 이날 저녁식사에도 모든 손님에게 김치를 한접시씩 따로 내고 맛을 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 제공]

2. 대담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찾은 박 전 위원장에게 존 햄리 소장이 건물 곳곳을 소개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각별한 사이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사진 앞에 멈춰서 웃는 모습. [박 전 위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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