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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에 부적합한 공사 강행한 시공사 과실” 잠정 결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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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밑에서 발견된 대형 동공을 관찰하고 있다. [뉴시스]

“30㎝가 넘는 크기의 호박돌들이 쏟아져 나올 때 시공사가 서울시(발주처)·감리단과 함께 진지하게 공법 변경을 검토했어야 합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 지하차로와 주변에서 발견된 ‘싱크홀(sinkhole·사람이나 물체를 그 속으로 빨아들이는 땅의 구멍)’과 동공(洞空·지하 동굴)의 발생 원인을 조사 중인 서울시 조사단 소속의 한 전문가(토목공학 전공의 대학교수)는 22일 이렇게 말했다. 호박돌은 하천 활동에 의해 생성된 땅에서 주로 나타나는 둥글고 큰 돌이다. 익명을 원한 그는 “땅에서 그 정도 크기의 돌이 나온다는 것은 수평식 그라우팅(굴 파기 공사 전에 지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와 물 등을 섞은 물질을 주입해 땅을 단단하게 굳히는 작업)이 제대로 될 수 없는 지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공사 방법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으나 시공사가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해 지반 침하를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이 조사단 소속의 전문가들과 서울시 관계자들이 추정하는 석촌동 지하차로 밑(지하철 9호선 919 공구) 동공과 주변의 도로 함몰의 발생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공사 현장에 대한 사전 지질조사 불가 판정→②지하차로 훼손 우려로 통상의 수직적 그라우팅 대신 수평적 그라우팅 공법 선택→③굴진기(쉴드 TBM)로 지하 터널 뚫기 작업 진행→④대형 호박돌들이 쉴드 TBM 앞부분의 커터(수직으로 회전하면서 땅을 파내는 장비) 작동 방해→⑤지하수에 토사가 섞인 진흙과 흙탕물이 터널 공사장으로 대량 유입→⑥공사 중단하고 보강 방법 강구→⑦공사 다시 진행→⑧지하 터널과 지표면 사이의 지반 유실 확인

공사장비도 현장 상황에 안 맞아
풀어 설명하면, 공사 현장은 백제 고분들이 나온 곳이라 지표면에 구멍을 뚫어 지질을 조사하는 작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의 결정 사항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크기의 돌들이 땅속에 묻혀 있는지 사전에 확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공사장 바로 윗부분이 지하차로라서 지표에 구멍을 뚫어 굳히기 물질을 주입하는 수직 그라우팅 공법을 쓰기가 어려웠다. 지하차로 밑의 방수재 훼손 등이 문제였다. 시공사·발주처·감리단은 수직 그라우팅 대신 땅속에서 앞쪽으로 파이프를 박아 땅을 굳히는 물질을 주입하는 수평 그라우팅 방법을 택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지하에서 굴진기를 전진시키는 ‘쉴드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의 공사에서 수평 그라우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공사는 터널 굴착 현장에서 지름 30㎝ 이상의 돌들이 자주 나타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주문으로 일본 업체가 제작한 쉴드 TBM의 커터는 최대 25㎝ 크기의 돌들이 출현 가능성까지만 예상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인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지름 20㎝ 이상의 돌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형 돌들 때문에 커터가 제구실을 못하고 수직으로 겉돌았다. 동시에 흙과 지하수가 섞인 진흙과 흙탕물이 공사 현장으로 대량 유입됐다. 그라우팅이 제대로 안 됐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가을의 상황이다. 우종태 경복대(건설환경디자인과) 교수는 “무거운 돌들이 지반에 섞여 있으면 수직 그라우팅으로도 땅이 잘 굳지 않고, 수평 그라우팅으로는 더욱 굳히기가 어렵다는 것은 토목계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공사 때 지반 유실 몰랐는지 의문
당시 서울시의 관할 부서도 이를 알았다. 공사를 중단한 삼성물산은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서울시와 감리단에 알렸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의 이은상 도시철도토목부장은 “올해 1월에 삼성물산에서 장비 교체 등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공사는 2월에 재개됐다. 그리고 지하차로 아래 구간의 공사는 외견상 별탈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지난 8월 5일 지하차로에서 180m 정도 떨어져 있는 도로가 함몰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인 조사 과정에서 지하차로와 지하철 공사장 사이의 동공들이 발견됐다. 길이가 85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조사단은 도로 함몰과 동공은 지하철 공사 현장의 터널 뚫기 과정에서 상층부 지반을 이루고 있던 토사가 섞여 나옴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공사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3222㎥가 더 많은 토사가 현장에서 배출된 것으로 적혀 있는 삼성물산의 현장 기록이 유력한 근거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공사장 윗부분에서의 토사 유실을 알았느냐는 점이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대형 트럭 100대분이 넘는 흙이 더 나왔는데도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삼성물산 현장 직원들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강제 조사권이 없어 그 부분까지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조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시공업체 고발도 검토
석촌지하차로 주변의 도로 함몰과 지반 유실은 시공사의 과실에 의해 빚어졌다는 게 8명의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서울시 조사단의 잠정 결론이다. 하수도관 파손이나 매립지 부실 조성 등으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지반 함몰(싱크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이 같은 조사 내용을 이번 주 초반에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삼성물산을 수사당국에 고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석촌지하차로를 관리하는 동부도로사업소가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도로사업소가 기둥 균열 등의 피해를 주장하며 삼성물산의 공사 과정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23일까지 이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토사 유실을 알았는지 등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개입이 필요해 보이지만 자칫 서울시가 모든 책임을 건설업체에 떠넘기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부적으로 고심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물산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서울시와의 법적인 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중앙일보 · 이상언 기자, 황은하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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