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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윤상군 유괴 백20일 생사조차 못 가린 공개수사 보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윤상군(14·경서중1년) 유괴사건이 공개된 지 12일로 보름째. 사건발생1백20일이 지나도록 윤상군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됐다.
사상유례 없이 대통령이 직접 사건수사본부에 나가 수사상황을 보고 받고 경찰을 독려할 만큼 국민의 눈과 귀가 이 사건에 쏠려있다. 그동안 경찰수사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수사과정과 전망 등을 요약해 본다.

<목격자>
▲윤상군을 데리고 있는 남녀를 태웠다 ▲범인들이 탄 승용차와 충돌할 뻔했다 ▲윤상군과 비슷한 학생이 차창에 손가락으로 「납치」라고 쓴 것 같다 ▲뒷좌석에 윤상군을 닮은 학생을 태우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봤다는 「택시」운전사, 승용차운전사, 모 은행직원, 윤상군 이웃주민 등의 신고가 있었으나 대부분 신빙성이 없었다.
지난 2일에는 『공덕동「로터리」부근골목길에서 윤상군으로 보이는 14∼15세 소년이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났으나 ▲날짜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지 못하고 ▲당시 현장주변을 지나던 어린이를 동반한 40대 여인의 신고가 없어 수사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시민제보>
이 사건이 전 국민의 관심을 끌고있으나 시민들 가운데는 범인수사나 윤상군을 찾아야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장난전화나 이틈을 노려 남을 모함하기 위한 편지 등을 보내 수사력을 낭비시키는 경우도 있다.
수사본부가 수사공개 후 접수된 2백67건의 전화제보를 분석한 결과 이중 70%는 『역학으로 도움을 주겠다』 『남산 굴에 가보라』 『정말 상금을 주는 거냐』 등등의 장난전화였고, 20%는 『××씨를 좀더 수사해 보라』 『가족을 중심으로 수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등 수사방향에 대한 충고, 나머지 10%정도가 『비슷한 환자가 있다』는 등의 성의 있는 제보였으나 사실상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탐문수사>
윤상군 집에서 마포우체국에 이르는 길목은 물론 부근 서울대교에서 아현동「로터리」에 이르는 구간과 용의점이 있는 지역, 범인들이 전화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협박편지발송지 등에 다각적인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성과는 미미한 편.
수사본부는 윤상군집 아래 구멍 가게에서 라면·떡볶이 등을 파는 정순덕씨(52·여)가 수사공개 다음날 「트레이닝」차림의 청년이 낀 일행 4명이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유괴사건, 전에 그 사고 바로 그거 아냐』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냈으나 옷차림으로 미루어 인근주민일 것이라는 것 외에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애를 먹고있는 것은 이처럼 실마리가 될만한 제보를 받고서도 뒤따르는 수사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

<주변인물수사>
수사대상에 오른 윤상군 가족주변의 친척, 이웃주민, 아버지 이씨의 사업거래자, 이씨 소유농장관계자 등은 모두 6백15명. 이 가운데 전과가 있는 친척, 도산된 경쟁업자·학교관계자 등 5∼6명이 초동수사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모두 무혐의로 밝혀져 경찰은 수사공개 후 주변인물 2백여명을 추가하는 한편 공덕동 일대 1천여가구의 호구조사도 함께 벌이고 있다. 이들 중에서는 특히 사건전후에 집을 옮긴 40여가구와 윤상군 집과 사소한 시비로 다툰 적이 있는 사람 등이 주목을 받고있다.

<전화·편지수사>
녹음된 전화소리와 필적감정으로 나이·학력·지능지수등 대체적인 윤곽은 드러났다. 경찰이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는 전화가 ③또는 ⑦또는 ⑧자로 시작되는 국번이며 편지는 발신지소인이 달라 범인들이 은신처를 자주 옮기거나 감춘 흔적이 뚜렷하고 범인은 최소한 여자1,2명과 남자1명 이상의 3∼4인조이며 범인들은 가족·내연 또는 불륜의 관계일 것이라는 점등이다.
전화는 평균 통화시간이 1∼2분밖에 안돼 국번추적에 실패했고 편지는 용지가 낡은 인쇄시설로 찍은 것으로 서울변두리 또는 경기도지역의 영세업자가 모조품으로 생산했을 것으로 보고 추적중이다.

<범행동기·수법수사>
연수양 유괴미수사건이 밝혀짐으로써 이 사건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며 원한에 의한 것으로 심증을 굳히고있으나 유인 또는 납치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아 범인들의 편지내용 등에 따라 ▲교통사고 가장 ▲다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도와주려다 함께 끌려갔을 가능성 ▲윤상군이 지체부자유아인 점을 이용, 면식범이 차를 태워주겠다며 유인했거나 ▲우체국부근에서 희귀한 우표로 유인했을 가능성 등을 모두 캐고는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이렇다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또 범인들이 첫 전화에서 돈을 요구한 점과 골목길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신고내용이 신빙성이 있는 점 등으로 원한과 금전이 중복된 범행일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이 경우 윤상군집에 원한을 품은 범인이 하수인을 매수했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수사전망>
수사당국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있는 것은 단독범이 아니어서 범인들 사이에 언젠가는 내분이 일어나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다. 단순원한 관계범행이라면 그 가능성은 희박해지지만 금전이 개입됐다면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인들이 자금에 곤란을 느낄 때쯤이면 갈등이 생겨 변심 또는 자수 등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있다.
또 하나는 경찰·가족 모두가 절망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윤상군의 생존가능성에 따라 시체 등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또 범인들이 긴장상태를 풀어 방심 끝에 단서를 흘리거나 또 다른 범행을 시도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아 경찰은 쫓고 쫓기는 줄달음이 소강상태를 이루면 의외로 쉽게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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