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강의는 옛말〃…대학분위기가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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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학사회가 큰 변화를 겪고있다.3백명 이상을 수용하는 혼잡한 대형강의실에서 「대중교육시대」가 개막되었고 초만원을 이룬 식당에서 「점심 먹기 전쟁」에 시달린 학생들의 생활「패턴」이 변해가고 있다.
상아탑으로 불리던 대학의 분위기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졸업30%탈락」이라는 숙명을 안고 대학문에 들어선 신입생들은 대학생활의 낭만을 구가하기에 앞서 점수경쟁 속에서「점수벌레」로 변해가고 이 같은 생활은 학생들의 의식까지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흐르게 하지 않을까 교수들은 우려하고있다.
서울대 자연대(26동)105호 강의실. 3백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대형강의실에서는 매주 월·수요일 상오 9시부터 점심시간도 없이 하오 6시까지 3백∼3백50명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국민윤리강의가 계속되고있다.
11일 5교시(하오 1∼2시)에는 3백50개의 좌석가운데 단 한자리가 비어 3백49명이 출석한가운데 김영문 교수의 강의가 있었으나 학생들은 질문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강의내용을 받아 적는 데만 열중했다.
뒷좌석이나 2층에 자리잡은 학생들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스승의 시선과 마주칠 기회는 한번도 없고 교수는 한 인격체에게 지식을 전하기보다 불특정 다수에게 강연하는 모습.
학생수가 많아지자 출석만을 전담하는 「출석조교」가 나타났고 학생들마다 좌석번호가 지정되기도 했다.
대형강의실이 없는 대학은 「콩나물강의실현상」을 빚고있는 실정.
연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연세대 의예·치의예과2학년 2백18명은 11일 상오 8시30분 1백48명밖에 앉을 수 없는 광복관 107호실에서 현종민 교수의 국민윤리강의를 들어야했다.
강의실이 모두 60명 수용수준으로 지은 이화여대강의실도 이번 증원으로 1학년의 경우 1개 반이 평균 78명으로 늘어나 학생들은 콩나물교실에서 강의를 받고있다.
이대 이모교수는 『조용하고 자유스러운 진리탐구의분위기는 옛말이 됐고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30%탈락을 면하기 위해 점수벌레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교수와 학생간의 대화의 단절은 더욱 짙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는 개교 35년만에 등록 학생수 2만명 선을 돌파했으며 농대와 의·치대의 학생·교수 등 1천5백여명을 제외하고도 관악「캠퍼스」의 하루 생활인구가 2만명을 넘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등교 때 정문에서 강의실에 이르는 길을 꽉 메우며 등교하는 학생들의 대열을 보면서『무서움을 느낀다』고했다.
약 1㎞에 이르는 등교 길을 꽉 메우고 30여분간 계속되는 등교행렬은 수만 대군의 진군을 방불케 한다.
이들 학생들은 상오 11시가 조금 넘으면 식당으로 몰려들어 1백50만 가량 줄을 늘어서서 한바탕 점심 먹기 전쟁을 벌인다.
구내매점 앞에도, 공중전화「박스」앞에도 줄은 계속되고 교내 어디를 가든 명상을 즐길 차분한 공간은 없다.
고대 앞 10여개다방은 강의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고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있는 신촌일대는 대학생들의 물결로 혼잡을 이루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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