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헌재 "대우 기획 해체? 김우중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우중 전 회장은)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 대우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 무너졌다는 내 기존 입장도 그대로다.”

 이헌재(70·사진) 전 경제부총리가 김우중(78) 전 대우 회장의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에 대해 입을 열었다. 가족과 미국 하와이를 방문 중인 그는 22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책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은 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책의 내용을 대략 전달받았는데 (김 전 회장이) 그간 늘 주장해오던 얘기뿐이다. 대우가 정권에 의해 해체됐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2011년 중앙일보에서 연재한) 회고록에서 대우와 관련한 사실과 생각을 모두 정리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아 2년 동안 대우그룹을 포함해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이 전 부총리와 김 전 회장의 위치가 달랐던 만큼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주장과 기억이 크게 엇갈렸다.

 김 전 회장은 책을 통해 대우자동차가 GM과의 합작, 빅딜 등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려 노력했지만 정부 관계자가 번번이 이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98년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던 GM과의 합작 논의에 대해 김 전 회장은 “결렬되지 않았는데 정부 관계자들이 그렇게 알린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99년 말엔 GM 측이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에게 비밀리에 인수의향서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도 썼다.

 이에 대해 이 전 부총리는 “대우와의 합작 협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은 98년에 GM 관계자를 만났을 뿐 이후론 접촉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전 부총리는 ‘빅딜 훼방설’도 강하게 부인했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삼성과의 빅딜을 성사시키고 싶었으나 정부가 ‘빨리 하라’는 등 압박을 해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는 “대우가 흔들리면 시장에 2차 파동이 엄청날 텐데 왜 정부가 나서서 대우를 흔들려고 했겠느냐”며 “어떻게든 빅딜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양측의 기대치가 너무 달랐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의 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다”라는 낙인이 붙은 것에 대해서도 김 전 회장은 정부를 원망한다. 대우그룹의 차입금은 1997년 말 이후 9개월 만에 28조원대에서 47조원대로 늘었다. 김 전 회장은 책을 통해 “정부가 수출금융(수출 주문 시 받은 환어음을 은행에서 할인, 현금화해주는 것)을 풀고 환율이 지나치게 치솟는 것을 막았더라면 차입금이 그렇게 늘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는 “계열사나 자산을 매각해 구조조정을 해야 기업도 살고 금융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우는 구조조정에 가장 소극적이었고 늘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26일 저녁 대담집 출간을 기념해 열리는 전직 대우 임원들의 모임 ‘대우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전 부총리 역시 다음 주 초 귀국한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