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공학 해야하나 안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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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고교의 남녀 공학 정책이 시·도 교육 위원회별로 다르고 일선 교사들간에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중앙일보 3일자 1·2판 10면 참조). 문교부는 이에 대해 지역간의 교육 여건이 달라 일률적인 방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장기 계획의 하나로 남녀 공학의 장단점과 시행 방안 등을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중·고교의 남녀 공학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일선 교육자를 통해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사회부>

<반대>교육 시설 등 먼저 확충을|외국 선례 무조건 따르는 건 곤란|문영한 <서울 고교 교장>
중·고 교의 남녀 공학을 국민학교나 대학처럼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나라도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교육 제도가 수립돼 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이는 의적인 형식에 불과하고 내적인 질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이제 우리도 우리 나라의 특수성과 실정에 맞는 한국적 교육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겠다.
중·고교의 남녀 공학문제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사회 구조와 교육 여건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며 특히 중·고교생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라는 점에 대해 충분한 연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고교의 규모가 선진 외국의 어느 나라보다 지나치게 큰 현실 속에서 섣불리 남녀 공학을 실시한다면 그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남녀는 선전적으로 다른 개성과 특질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녀 학생은 화장실·가사실 등 각기 다른 시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중·고교는 대부분 규모만 클 뿐 그같은 시설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뿐 아니라 중·고교 교육 과정도 문제다. 남녀 공학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특기·취미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은 선택 과목의 폭도 대폭 넓혀야 한다. 그런데도 현행 교육 과정은 너무 경직돼 있고 또 선택 과목의 폭을 넓힐 수 있을 만큼 시설과 교사도 충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흔히 있었던 것처럼 외국의 제도가 좋다고 무조건 따라가서는 안된다.
현장과 유리된 시책을 성급히 실시하여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선례를 경계하며 남녀 공학에 앞서 교육 여건의 정지가 급선무라고 본다.

<찬성>이성 접촉 자연스러워져|「예비 신사·숙녀」의 도 가르쳐야|최종옥 <이화 여고 교감>
중·고교에서도 남녀 공학을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유치원·국민학교와 대학에서 남녀 공학을 하면서 유독 중·고교에서만 남녀를 따로 떼어놓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중·고교생은 각종 성징이 발육하는 사춘기다. 즉 이성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생기는 때다. 이 때문에 남녀를 따로 떼어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남녀 양성이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위적으로 학교에서만 떼어놓는다고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관심은 호기심이 되고, 이성을 신비스러운 「베일」속의 존재로 생각하게 되면 사고는 더욱 커질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본다.
흔히 성 문제와 관련한 생활 지도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 연구로는 남녀 공학으로 인해 성 문제가 더 생기지는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남녀 분리 교육으로 사춘기 남녀의 성 문제를 예방하겠다는 소극적 방법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성과 접촉하도록 하고,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예비 신사」「예비 숙녀」의 도를 가르치는 것이 보다 적극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녀 공학에 따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 시설 문제, 남녀가 함께 생활함으로써 형성되는 남녀의 중성화 경향 등 생활 지도상 예상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부딪치는 조그만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긴 안목으로 청소년을 교육해야한다. 교육은 모든 변화와 발전을 예견하고, 그러한 상황에 적응·대처하는 방법을 앞질러 가르쳐야하는데도 오히려 가장 변화에 둔하고 구태의연하다.
학교 울타리만 벗어나면 서로 만나고 어울려야 하는 것이 남녀 관계다. 학교는 이 같은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남녀공학 교육을 통해 합리적 관계를 맺도록 해야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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