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메우기에 급급한 『백분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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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네 TV가 색깔을 가긴 뒤『눈 나쁜 사람의 미덕』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안경을 썼을 때 뚜렷해진 실상에 환멸을 느끼듯, 요즈음「브라운」관에 비치는 모든 세계가 새삼 허구란 것을 뒤늦게 깨닫는 다고나 할까.
흑백시대에도「드라머」나「쇼」를 위한「세트」나 등장인물들의 분장이 엉성한 줄은 알았지만 색깔의 옷을 입은 후부터는 눈가림조차 어려워져 그 초라한 실상이 너무나 적나라해서 차라리 보는 쪽이 눈을 감고 싶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고대광실의 웅장한 돌담이고자 했으나「페인트」칠한 얇은 판자인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 주름을 감추려 두껍게 화장한 늙은 여인처럼 딱하다.
흑인분장이 단지 얼굴에만 머물러서 느닷없이 하얀 손을 보게될 때의 민망함 (12일『형사』「나이지리아의 꿈」), 그려 넣은 것이 너무도 여실한 똑순이 엄마의 주근깨 (KBS 제1TV『달동네』), 옛날 아낙네의 손톱 끝에서 반짝이는 붉은「에나멜」(22일『일요일이다「코미디」출동』), 그밖에도 가짜 꽃인 것이 한층 분명해진 치졸한 솜씨의 꽃꽂이라거나 한국인의 머리빛깔은 검은 색이 아니라 밤색이나 다갈색이라고 말해야 타당할 만큼 염색머리 일색의「탤런트」·가수들-.
이런 소소하다면 소소한 것들이 괜찮은「드라머」나 「쇼」가 주는 재미에 빠져들려는 시청자들의 기분을 단번에 망쳐버리는 무서운 복병이다.
TV「프로그램」의 대형화 경향은 세계적인 추세라 하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우리도 『1백분「쇼」니『1백분「드라머」니 하는 대형「프로그램」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프로그램」들이 생겨난 초기의 몇 회는 제작진들의 의욕도 높고 보는 편에서도 푸짐하달 까 흡족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몇 달만에 벌써 제작진도 시청자도 맥이 풀렸달 까, 만드는 쪽은 1백 분의 시간을 채우기에 허덕이는 느낌이고 보는 쪽은 지루함을 못 이겨서 1백분 동안「채널」을 고정시키지 못한 채 여기저기 돌려보게 된다.
더욱 21일의 1백 분을 「둘리즈」내한공연 녹화중계만으로 채운 것은 토요일 저녁 8시라는 방영시간으로 보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기는 「패밀리·쇼」의 성격에 걸맞지 않는 기획이었던 것 같다.
요란한 의상, 선정적인 몸짓에 젊지 않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에는 혼란스럽게만 느껴지는 발성과 조명의 1백 분은 정말 길고 지루하고 피곤한 것이었다.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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