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숨겨놓은 눈물을 찾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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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데 미군의 폭격으로 부상하거나 죽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머리가 으깨진 채 숨진 남자, 부모와 양팔을 한꺼번에 잃은 아기, 화상으로 괴기한 모습으로 변한 여자, 두 발목이 너덜거리는 소녀의 모습…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들이었다.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거창한 명분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어떻게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저렇게 참혹하게 파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 속에 내재해 있는 잔혹성.난폭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오늘따라 문과대학 입구에 붙어 있는 광고문 중 "동문회에 안 나오면 오늘이 제삿날""MT에 불참하는 자를 축출하자"등 위협적이고 폭력적 문구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한 구석에 붙은 광고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숨겨진 보석을 찾아서; 숨겨진 눈물을 찾아서; 숨겨진 진리를 찾아서…혜명회로 오십시오."

교내 불교 동아리가 회원 모집을 위해 내붙인 광고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마음의 보석도, 눈물도, 진리도 모두 숨어 있다는 전제가 담긴 이 광고문에서 '숨겨진 눈물을 찾아서'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문득 오래 전에 미국에서 만났던 킹 부인이 생각났다. 친구의 이웃이었는데 갑자기 좀 와달라는 전갈이 왔다. 한국 고아를 입양해 사회복지소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날인데 낯선 땅에 와서 푸른 눈의 엄마를 처음 상면하는 자리에 같은 한국인이 있어 한국말을 좀 해줄 수 있다면 아이의 충격이 훨씬 덜하리라는 배려에서였다.

킹씨 집에 도착했을 때 킹 부부는 집안 군데군데 꽃과 동물 인형들을 배치하며 제이슨-그들이 지어놓은 아이의 이름-을 맞이할 채비로 분주했다.

마침내 사회복지원 직원이 두살난 제이슨을 안고 들어올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한 뇌성마비로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고 한 쪽 눈까지 먼, 중증의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아이를 받아 안고 한참동안 아이를 내려다 보던 킹 부인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했다. 아이의 상태로 보아 그녀가 실망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제이슨을 꼭 보듬어 안으며 하는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너무 예쁘군요. 이렇게 예쁜 아기가 어떻게 내 아이가 되었을까요. 내가 운이 너무 좋지요?"

지난해 다시 제이슨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제 거의 열살이 된 제이슨은 엄마 뒤에서 나를 열심히 훔쳐보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었다. 제이슨을 처음 보고 우는 모습에 당황했었다고 말하자 킹 부인이 대답했다.

"제이슨은 지금도 늘 나를 울게 만들지요. 어제도 포크를 여러번 떨어뜨리면서도 혼자 식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 울었지요. 전 눈물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이슨은 제게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킹 부인의 말처럼 사랑이란 결국 아주 쉽고 단순한 감정-불쌍하고 약한 자를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래 전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했지만 어쩌면 눈물은 사랑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라고 했다.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이 찬란한 봄에 맞는 부활의 아침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