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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 돌다 옆 친구와 꽝 … 초등교에 '직각 100m 트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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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8일 울산 중구 외솔초등학교 운동장에 ‘직사각형 육상 트랙’이 설치돼 있다. 이 트랙은 가로 48m, 세로 64m다. 가로·세로 라인이 만나는 지점을 곡선으로 마감한 일반 트랙과 달리 90도로 꺾여 있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좁은 운동장을 최대한 활용하려다 보니 직각으로 꺾이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울산=송봉근 기자]

18일 오후 2시 울산 중구 외솔초등학교 운동장. 가로 48m, 세로 64m 크기의 운동장 둘레에 붉은색 육상 트랙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곡선으로 마감한 다른 학교의 트랙과 달리 이 곳은 가로·세로가 만나는 지점이 90도로 꺾여 눈길을 끌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직사각형 트랙’이다.

 1학년 김모(7)군은 “빠르게 달리다 속도를 줄이지 못해 모퉁이에서 친구와 부딪혀 넘어진 적도 있다. 둥글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설 책임을 진 이중규 울산시교육청 학교시설단장은 “학교 부지가 좁은데 녹지 등 친환경 공간을 확보하려다보니 하는 수 없이 운동장 면적을 줄였다”며 “트랙을 직각으로 만들지 않으면 직선 50m 달리기 코스도 만들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안전 문제가 제기돼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수가 줄고, 학교 수는 늘었는데도 운동장이 크게 좁아진 것으로 교육부가 20일 이노근(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1만1446곳 중 일직선이나 대각선으로 곧게 100m 트랙이 설치된 운동장을 보유한 학교는 3600곳(31%)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10년 전(54%)에 비해 23%p 줄었다. 이 의원은 “100m 달리기도 할 수 없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초·중·고는 일정 규모 이상의 ‘체육장’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수가 1000명인 초등학교는 3800㎡ 규모 체육장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엔 체육관·강당 등 실내 체육시설과 스탠드·식수대 면적까지 포함돼 실제 ‘운동장’ 면적은 훨씬 줄어든다. 게다가 인근 학교 운동장과 가깝거나 지역 여건상 체육장 확보가 곤란한 경우엔 기준을 완화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예외를 적용받아 운동장이 없는 학교도 전국 15곳에 이른다.

 교육부 김승겸 인성체육예술교육과 연구사는 “도심에 학교 지을 땅을 확보하기 어렵고 기존 학교도 새로 건물을 세울 곳이 마땅찮아 운동장부터 줄인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학교에서 100m 달리기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 학생신체능력검사(체력장) 대신 2009년 학생건강체력평가제(PAPS)가 도입되면서 100m 달리기는 체력 측정 항목에서 빠졌다. 한연오 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센터 연구원은 “순발력을 재는 데는 50m 달리기면 충분하다”며 “해외 사례와 학생들의 체력이 떨어진 점, 좁은 운동장 상황 등을 감안해 체력평가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체력도 떨어졌다. 서울시교육청 조현준 체육건강청소년과 장학사는 “예전과 달리 100m를 뛰면 70~80m쯤 지나 다리에 힘이 풀리는 초등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는 체육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좁은 운동장을 여러 학급이 나눠써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개봉초 강승국 교사는 “체육수업이 주 3시간이지만 운동장은 1시간만 쓴다” 고 털어놨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체육장 설치 규정에서 운동장의 범위부터 명확하게 규정하고 운동장 설치 기준의 예외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기환·김경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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