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맹과 북괴의 입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9일부터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리는 비동맹외상회의가 한반도문제를 거론치 말도록 북괴가 요청한 사실은 비동맹외교를 둘러싸고 벌어져온 외교경쟁에 한 전기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비동맹회의는 북괴의 가장 큰 외교기반이었던 반면 한국으로서는 열세를 면치못한 외교무대였던만큼 이번에 북괴가 스스로 한반도문제를 거론치 말아달라고 요청한 사실은 여러모로 음미할만하다.
74년 「리마」회의에서 한국의 회원가입이 좌절되고 북괴의 가입이 실현된 후부터 북괴는 국제비동맹운동에서의 지위격상을 꾸준히 노려오다 지난 79년 「아바나」비동맹정상회의에서는 마침내 비동맹 조정위원국이 되기까지 했다. 또 이 회의에서 북괴는 한반도 문제를 상정해 주한미군철수·UNC(유엔사)해체·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등을 채택시키는데도 성공했던 것이다.
올해 「뉴델리」회의를 앞두고도 북괴는 그동안 다수의 대표단을 비동맹제국에 파견하여 회의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위한 맹렬한 공작을 전개해왔다.
이번 회의에서는 특히 그들의 소위「고려연방제」안을 한반도조항에 추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던 북괴가 돌연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거론치말도록 요청하고 나선것은 무슨 영문일까.
이 배경에는 우선 그동안 달라진 국제정세와 그에 따른 비동맹 자체의 분열경향이 큰 원인의 하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동맹운동을 「친소」경사로 끌고가려는 「쿠바」·「베트남」등과 온건제국과의 대립, 「캄보디아」의 친월정권과「폴·포트」정권과의 지지경쟁을 둘러싼 대립으로 분열상을 보여온 비동맹운동은 이번 「뉴델리」회의를 앞두고도 「이란」-「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의 친소정권 인정문제등을 둘러싸고 다시 심각한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이견의 틈바구니에서 북괴가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할 경우 다른편의 반발을 사게되는 어려운 처지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판에 북괴가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는 한반도문제를 제기하여 다른 나라들로부터 충분한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것이다.
그나마 비동맹권내부에서의 북괴입장이 최근 전두환대통령의 방미와 「1·12제의」로 인해 약화하고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당사자끼리 해결할 문제라는 국제적인 인식이 점고하는터에 남북최고지도자간에 왕래하며 문제해결을 모색하자는 전대통령의 「1·12」제의는 비동맹각국으로부터도 큰 공감을 얻었으며, 이를 굳이 거부하면서 문제를 국제회의에 끌고가려는 북괴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북괴의 한반도문제 불거론요청은 비동맹운동을 상대로 한 북괴외교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수세에 있던 한국의 비동맹외교를 적극화시킬수 있는 계기라고도 생각된다.
특히 전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유엔」을 중심으로 전개된 분위기는 국제적으로 한국측에 유리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발트하임」「유엔」 사무총장의 중개로 전달된 「1·12제의」를 북괴가 다시거부하고 우리측은 거듭 이를 촉구한 사태의 발전은 북괴의 국제적입장을 약화시킨 게 분명하다.
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간 해결이란 우리입장이 국제적 공감폭을 넓혀가고 있는 이상 우리는 이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록 북괴가 비동맹 조정국이요, 비동맹수교국에 있어서도 우리가 유리하지는 않지만 이번 기회를 전기로 포착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