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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초하루 새아침에 농어를 빈다-충남 서산군 안면면 황도리|5색의 만선기 물결 축제사흘 뒤덮어|"돈 실러가세…"가락 속 온 마을 덩실 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칠산 앞 바다에 조기도 많고/우리네 주머니 돈도 많다/순풍에 돛달고 만경창파로 떠나세/ 돈실러 가세 연평바다로/에헤-어허쿵, 에헤-어허쿵.』
풍어타령의 힘찬 가락이 서해어촌의 새벽을 연다.
충남 서산군 안면면 황도리-.
음력 정월 초하루마다 어부들이 모여 1년 내내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을 올리는 섬마을이다.
『삘리리∼닐리. 칭칭 꽹꽹, 등등 등더쿵, 얼쑤 얼쑤.」징소리·꽹과리소리·북소리·고적소리가 바람과 파도를 타고 수평선으로 날아간다.
휘어져 감기는 구성진 타령에 신 오른 어부들의 엉덩이춤·어깨춤·곱사춤이 한마당 흔들어지게 벌어진다. 갑판의 솟을 장대엔 오색의 만선기가 덩달아 출렁인다. 집집마다 돌담 틈바구니에 몸을 숨긴 아낙네들은 별나게 흔들어대는 남정네들의 춤짓에 키들대며 넋을 잃는다.
마을의 평안과 만선을 기원하는 황도어촌의 풍어제는『봉기 풍어타령』과 함께 3백년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
장화처럼 길게 뻗은 태안반도와 홍성사이 아산만의 점찍힌 황도의 옛 이름은 「황도」. 밭한뙈기, 논한 마지기 없는 사나운 섬이었다. 주민들의 생활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자식과 형제를 수없이 바다에서 잃은 섬마을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겸손과 신에 대한 경외심이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산설고 물설을 땐 산신님께 빌고, 바다가 노할 땐 용왕님께 치성을 드렸어)50년 동안 키잡이를 해온 강보근씨(80)는 바다를 원망하기보다 바다를 두려워하고 감사의 염을 지녀왔기에 오늘의 황도가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1백10가구에 주민 수 6백46명. 아녀자를 빼고는 모두가 뱃사람들이다. 가구당 소득 2백60만원으로 원양어업이 가능한 발동선만 26척으로 충남도에서는 알뜰 부자섬으로 알려져 있다.「황도의 부」를 바다가 준 것으로 감사하는 어민들의 풍어제는 준비부터가 그처럼 지극할 수가 없다.
풍어제 닷새 전부터 선주(선주)집엔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둔다. 의식을 총지휘할 제주(제주) 는 마을에서 덕망이 있는 원로를 선발, 풍어제가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 집엔 드나들지 못한다.
『아낙들은 배에도, 제당에도 얼씬 허덜 말아야 허는 뱀여. 특히 생리중인 여자는 집안에만 있어야제.』올해 제주로 뽑힌 윤지성씨(57)는 풍어제 기간에 부인과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는다며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
풍어제의 서막은 섣달 그믐날밤의 선상제. 지난 한해 무사함을 감사하고 새해1년 배와 선원을 보살펴 줄 것을 용왕께 기원한다. 선상제에선 정월 초사흘까지 계속되는 의식에 참석할 열두제신(제신)을 초대하기도 한다.
의식의 절정은 정월 초이틀. 하오2시 황소의 생피를 제물로 바치는「피고사」가 시작된다. 제물로 바쳐지는 황소는 지난5일 동안 매일 목욕을 하며 제주의 알뜰한 보살핌을 받아온 순 황도산. 황소의 머리·귀·혀·위·고환 등 몸통의 중요한 부분이 나누어져 제단에 오른다.
마을 뒤 나지막한 야산에 자리잡은 제당. 군왕상을 중심으로 좌우 6개의 신상이 도열된 제당의「피고사」엔 제주와 선주들만 참석한다. 여자로서 제당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은 무당과 제주의 아내 둘뿐.
뜨거운 황소피가 제단에 오르면 제주와 선주의 배에·헌작이, 뒤따르고 무당 박한성씨(65)의 신풀이가 시작된다.
『군왕대신·삼불제석·성조대신·동서남북 이십 사방 잡귀 쫓는 장군이시여….』잡은 방울에 신이 붙어 무당 박씨의 재복신 「대감거리」가 흥겹게 이어진다.
『먹고 남게 도와주고/쓰고 남게 도와주는 몸주대감·보물대감·재물이 대감이 아니시냐….』박씨의 선도에 제주·선주는 『예, 그렇고 말굽 쇼』하며 정성 들여 두 손으로 빈다. 무당의 열두거리가 다 끝나 제당제를 마치면 다음은 온 마을의 축제가 벌어진다.
젯밥과 술을 머리에 인 제주부인의 뒤를 따라 농악대가 풍어타령을 울리면 도포자락 펄럭이는 흰 수염의 제주, 고깔모자에 남철릭 걸친 무당, 선주, 선기를 든 선원들의 순으로 놀이터로 향한다.
이때부터는 집안에서 안달 떨던 아녀자들도 놀이 참석이 허용되어 온 섬마을이 덩실 춤으로 들뜬다.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며 밤을 새워 상오6시가 되면 의식의 마무리단계에 들어간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제물에 쓰고 남은 쇠고기를「지숙」이라고 부르는 꾸러미로 만들어 배의 척수대로 26개를 만들어 배에 집어던진다.
제주로부터「지숙」을 받는데는 제일 달리기를 잘 하는 청년이 나선다.
제주가『지숙이요!』하고 외치면 재빨리「지숙」을 받아 쥐고 배로 달려 먼저 올려 놓아야한다. 그래야만 그해에 고기를 많이 잡는단다. 이들의 풍어제는 현대적 감각에서 볼 때, 제사의식을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고 축제를 통해 마을 전체의 화목을 꾀하며 마지막에 운동회까지 겸했다는 느낌이다.
황도 섬 마을의 풍어제- 그것은 언제까지나 거친 바다와 살아야 할 운명공동체의 절박감이 인간애로 승화 된 하나의 의식으로 보아야겠다. 【황도=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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