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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도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사랑한다. 큰길과 골목과 집들을 사랑하고 그 지붕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1981년을 사랑하고 이제 막 시작되는 2월을 사랑한다. 아침과 햇볕과 일터를 사랑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들의 사랑이 허덕일 때가 있다. 거리가,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생활이 더없이 피곤해질 때가 있다. 하기야『황전지』의 시인「엘리어트」같은 이는 오래 전부터 병든 도시의 신음소리와 낡은 문법이 몰락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직접 우리들의 귓전에서 굉음으로 울릴 때 우리들이 갖는 놀라움은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3일 발표된 경찰의 통계만 해도 그렇다. 지난1월 한달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강도 등 강력 사건만도 무려 3백60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갖는 사람의 깨어짐이 얼마나 빈번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놀랍고 슬픈 일은 다음의 사실에 있다. 경찰에서는 1월에 발생한 사건 들 중 이미 3백9건을 해결했지만 그 중 78%가 청소년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였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고 한없이 맑고 깨끗해야할 그들의 손이 흉기를 휘두르지 않으면 안될 어떤 절박한 이유라도 있었는지.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장발장」의 빵 때문에「프랑스」의 미래를 절망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또 안다. 「네로」의 식탁을 위해「로마」의 시민들이 무엇을 바쳐야했던 가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의 이런 풍조를 배금사상을 바탕으로 한 쾌락주의·향락주의에 원인이 있다며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시키려한다. 그러나 이들 청소년들에게 배금사상을 선보이고, 향락의 마성(마성)을 실험해 보이며, 요즘의 세상을 제공해 준 것은 누구인가. 물론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왔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몸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며, 배금이 어찌하여 양심의 적이 되는지를 실행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맹자의 어머니가 집을 세번이나 옮겨야했던 그 간단한 연유를 실현하지 못 한데에 우리들 시대의 맹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제까지의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돈보다는 인간을, 쾌락보다는 사람과 양심을 소중히 여기며 살려고 노력한다면 멀지않아 우리들의 도시는 오래도록 살아 볼만한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윤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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