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와끼·세이이찌』씨|아직도 이어져온 「남녀칠세부동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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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문에 글을 쓰는 것은 일본에서라면 나로서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인데 기회가 오고 보니 외국에 와있는 보람으로 여겨진다.
내가 한국에 온 것은 77년3월이니까 이럭저럭 4년이 가깝다. 그동안 즐거웠던 일·괴로웠던 일들이 많았으나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몇 가지만 적어본다.

<뜻밖에 미녀와>
어느날 「미스·코리아」와 같이 식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중년부부도 동석했었다. 그녀의 음성은 좀 앳되고 늘씬한 몸매에 과연 미모였다.
마침 마주앉게 되니 공연히 마음이 설레어 의미없는 얘기만 하면서 한시간반 정도의 식사시간을 거의 먹는데만 낭비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자리를 떠날 시간이 되어 한차를 타고 나의 사무실 앞에서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며칠 후에 그녀를 만나게 해준 분과 만났는데 그분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 다음에 다시 같이 만나 식사라도 하자고 하여 나는 꼭 묻고 싶은 질문을 생각해놓고 은근히 기다렸으나 해가 바뀌어도 소식이 없다. 아마도 미녀와의 만남은 한번만 꿈이 되려나보다.

<내기 아닌 내기바둑>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기분전환으로 바둑을 두곤 했다. 다행히도 하숙집 근처에 기원이 있어서 그 곳을 자주 찾았다.
거기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거의가 내기바둑으로 이겼다 졌다 하면서 천원짜리 한장이 왔다갔다할 뿐이었다.
일본 기원에서는 내기바둑을 두지 않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했고 여러 판을 두고 나도 생기는 것도, 잃는 것도 없이 담담하게 자리를 뜨는 정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모두들 실력이 백중한 적수끼리 짝지어져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내기없이 두는 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신선놀음이 아닐까 느꼈다.

<여성과 사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가까운 사이가 아닌 남자와는 사진을 찍는 것을 몹시 꺼리는 것 같다.
나도 몇 번이나 거절을 당한 적이 있다.
왜 그런지 알아보니까 특히 미혼여성의 경우 혼인에 적지 않은 지장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둘이서 같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주위사람들에게 두 사람이 대단히 가까운 사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있던 하숙집의 가정부 아가씨까지 『남자와 둘이서 사진을 찍으면 큰일난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아직도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그러나 요행히도 한번은 한국여성과 둘이서 사진 찍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후 만날 기회가 없었고 1년 후 그 여성은 이미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와서 사진을 전할 길도 없고 전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해서 그 여성의 장래에 행복이 있기를 빌고있다.
◇약력
▲44년 일본 북해도 함관시에서 출생
▲77년 일본 북해도 대학문학부 박사과정수료
▲77∼79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유학
▲79년 계명대학교 일어과 전임강사
▲80년 이후 주한일본대사관 홍보관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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