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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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사람들이 즐겨쓰는 말에「놀랐지만 기분은 좋다」(pleasantly surprised)는 표현이 있다. 한미정상회담의 발표를 보는 기분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하겠다. 놀랍고 반갑다.
「레이건」대통령이 취임직후의 바쁜일정속에서 전두환대통령의 방미초청부터 했다는 사실은「레이건」행정부가 미국의 우방으로서의 한국의 중요성과 세계전략상의 한반도의 위치를 크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레이건」자신을 포함한「레이건」진영의 주요 참모들은 작년 여름 이후의 대롱령선거때부터 대한방위공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군의 한국주둔은 계속 되어야 하고, 인권 보다는 안보쪽이 우선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레이건」행정부의 이런 자세가 그의 보수적인 성향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취임과 함께 철군보따리와 인권의「방망이」를 들고 한국을 놀라게하던「카터」행정부의 자세와는 좋은대조를 이룬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와 안정이 미국에 안보상의 이익이 된다는 사고를 대한정책의 바탕에 깔고 있지만 미국의 공약과 지원에 안전보장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쪽에서 보는 한미우호·협력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성에 비추어 한미관계는 지난 4년동안 너무 많은 기복을 겪었다. 철군문제·인권정책·인권정책·박동선사건이 뒤범벅이 되어 한미관계는 혼미와 마찰을 계속하다가 79년6월「카터」방한으로 겨우 정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10·26사태이후도 서울과「워싱턴」의 관계는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방에서는 한미 두나라가 명랑한 관계, 동반자관계를 회복했노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희망적인 생각에 불과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척경에서 한국에서는 제5공화국의 출범, 미국에서는「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레이건시대」가 열리면서 그 벽두에 양쪽의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양국간의 현안문제와 일반적인 국제정세에 관해 흉금을 터놓고 의견을 나눈다는 사실은 두나라관계의 장래와 한국의 안보,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 큰의미를 갖는 행사라고 하겠다.
「워싱턴」의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들은①한국의 안보②한국의 정치발전②남북한 ④한미경제관계 ②세계정세일반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카터」행정부는 79년7월 미군철수계획의 중지를 발표하면서 81년에 가서 한반도 정세를 고려하여 추가철군 문제를 검토하기로 한바 있다.
「레이건」대통령이 전두환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계속주둔과 미국의 방위공약을 재확인한다면 철군위력으로 생겼던 한국사람들의 불안을 최총적으로 맺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 두나라의 수뇌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방위공약의 확인이나 한반도의 전략적위치의 확인에 그칠수는 없다
언젠가는 있게될 미군의 완전철수와 한국의 자력방위를 전제로 하는 장기적인 한국군의 전력강화의 방안이 논의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은 철군보안조치로 한국의 전력증강계획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의 정세변화와 유가인상 그리고「인플레」를 고려한 지원책의 재조명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의 국내정치문제에서는「레이건」대통령이 전두환대통령을 최우선적으로 초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제5공화국의「정당성」을 인정하는 조치로 해석할 수가 있다.
남북한문제는 전두환대통령의 남북한수뇌회담제안의 추진을 통해서 남북한의 긴장완화와 공존방식의 모색이라는 장기정책을 세우고, 미국은 중공과 소련을 상대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바람직한 것이다.
「레이건」대통령의 보수·강경정책이 한국문제를 위한 미국의「조용한외교」에 지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닉슨」이 반공사상의「이미지」를 역이용하여 중공과의 관계개선에 성공한 전례를 보아도「레이건」대통령이 가진 외교적인 잠재력을 과소평가만 할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관계에서는 한국에서 나가는 신발류·섬유제폼·전자제품등에 대한 미국의 규제를 완화하는 문제가 실무자들의 별도 회담에서 다루어질 것이고 또 다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70년대를 통하여 대미무역에서 거의 흑자를 유지하다가 80년에 적자를 기록했다.「레이건」의 보호주의적인 자세가 미국업계의 압력과 한국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어떻게 절충될 것인가가 주목된다.
세계정세 일반에 가서는 태평양지역의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는 소련의 영향력확대저지와「페르시아」만의위기·석유문제가 주요 현안들인데 이점에서는 두나라 수뇌들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미관계는 이제 탄탄대로에 들어선 것일까. 과연 정상회담 한차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가까운 동맹국사이라는 각기 다른 역사와 현실이 있는 한 국가이익간의 상술은 크든 작든 있지 마련이다.
그러나 한미관계가 69년의「닉슨·독트린」의 선에서 7l년의 미군7사단철수가 단행되면서 갈등의 70년대를 맞은 것에 비하여 정상회담으로 시작되는 80년대는 상호협력과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련의 팽창정책,「에너지」와 식량문제등으로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는 80년대의 요청이기도하다.
외교는 국가간의 이해의 절충이다. 한·미두나라사이를 두고 혼히「정의외교」라고하는 표현은 50년대에나 어울렸을까, 이제는「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니까…』라는 덜 세련된 사고는 극복할 때가 왔다.
『혈맹관』이 우리쪽만의「사고방식」이라는걸 우리는 가까이「박동선사건」에서 배웠다.
80년대의 한미관계가 소위 수평적인 동반자관계가 되려면 미국을「가슴」으로가 아니라「머리」로 대하는 자세부터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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