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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인-김형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오존」냄새가 나는 바닷가에서 자란 탓인지 언제나 바다는 나에게 어머님같은 향수를 갖게 한다.
우연히 생각이 나서 작년 여름 화판을 들고 바닷가엘 갔었다. 수억년을 파도에 씻긴 얼룩진 돌멩이가 별처럼 깔린 물가에는 옅은 남색 빛깔이 섞인 비취색 바닷물결이 비만처럼 찬란했다.
이 거대한 공간을 등에 지고 아름다운 소녀는 수정알 같은 물방울이 방울방울 얼굴에 열린채 자주빛 사념에 잠겨 서있었다. 나는「이젤」을 세워놓고 그녀를 그리게 되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에야 이 그림을 보게된 나의 친구 L은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최근까지도 그 그림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퇴화된 마음의 껍질을 벗기고 공기와의 접촉이 전혀 없는 그 인간과의 대화가 이뤄지는 그러한 여인의 「프로필」을 그려야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거의 2년 동안 모 잡지사의 의뢰를 받고 한국의 여인상을 그린 적이 있다. 특히 이 표지의 여인상은 까다로운 조건이 많아 계절을 그려야했고 심지어는 그토록 여인들이 좋아하는「액세서리」까지로 생각해야 했다. 거기다 삶에 인고를 초월한 여인의 아름다운 표정을…. 2년 전 필자가 동남아를 돌았을 때다. 인도의 여인에 대해서 느낀바가 많았다.
흔히들 말하지만 그녀들의 분명한 선과 환히 뚫린 흰눈, 그래서 그녀들은 무쇠 판을 녹일만한 정염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에게서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여기에서 오는 공포, 그녀들이 다가설 때마다 0도 이하의 찬바람이 온몸에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곤 했다.
우뚝 솟은 코에 함빡 꺼져버린 눈과 볼엔 표정이 흐르지 않았고 기껏해야 노란 눈썹이 아래위로 움직일 정경도니 .
그러고 보면 우리 한국여인의 탄력있는 얼굴, 가장 알맞게 조형된 선과 면적, 그리고 높고 낮음이 무리 없이 조각된 얼굴에선 청명한 가을 하늘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흐르고 있다.
이것은 면면히 내려오면서 축적된 인정과 생활, 풍토적 조건에서 얻어진 유다른 우리 한국여인 특유의 선과 색깔과 윤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다듬어진 얼굴에는 비경의 밀화가 있고 그 모습에는. 무한한 우주의 움직임이 있고, 그 미소엔 꽃같은 조형이 있다.
이 모든 표정은 바로 우리 한국 여인의 자랑거리라 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생각한다. 이같은 창조주의 뛰어난 작품과 더불어 탄생되었다는 기쁨 속에서, 그 아름다음을 화필로 옮길 수 있다는 기쁨 속에서 매일매일 삶의 보람을 느낀다.<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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