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성에 낀 창이-김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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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하늘아래 말 모양의 산, 천마산-.
그렇다고 산세가 그리 높은 편도 아니다. 나는 요 근래, 하늘에 대해 많은 집착을 보내고 있는데 내 머리위에 언제나 하늘이 열려있다는 것은 자비로운 품에 안길 수 있다는 너그러움 때문이다.
험악한 준봉하고는 거리가 먼 천마산도 하늘의 배경이 없으면 훨씬 삭막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달리다가 평내역에서 내러 작은 소로로 접어들면 인가가 드문드문 서있다.
장욱진 화백이 일부러 눈을 크게 뚫어 묘사한 소도 몇 마리 보인다. 달구지도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둑에 방치되어 있다. 천마산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 냇물은 입을 다물고 얼어붙어 있다. 가을에 왔을 적에 내 작은 키의 어깨를, 목을 휘감던 갈대는 시들고 그 자리에 시든 것을 누가 감싸 듯 눈발이 날릴 것 같다.
나는 천마산 정상을 오른 적은 한번도 없다. 표표(표표)하게, 그리고 예고 없이 이곳을 찾는 것은 산에 가린 하늘의 배경을 보기 위함이고, 바람소리에 귀를 열어놓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작은 소로의 끝, 평지가 끝나는 곳에 J의 별장이 있다. 관리를 맡은 산골 늙은 부부가 별장을 지킨다. 그들의 손은 나무등걸 같다. 천박하지만 욕심이 없고 소박하고 유순한 산의 정기에 그을린 인품이 마음에 든다. 배낭을 걸머지고 불쑥 나타나는 이유를 그들은 알고도 모른체 한다.
이틀정도 별장에 머무르게 되면 새벽녘에 일어나 야산의 능선을 해메다가 군불을 때는 장판지가 해진 방에 나는 벌레처럼 틀어박혀 얼씬도 안 한다. 관리인 부부는 내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눈발이 차차 굵어지고 바람 소리가 발톱을 세운다. 그럴 때는「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경이의 치장하지 않은 천진한 모습도 성에 낀 창에 얼룩진다.
머리도 볶고 허리가 하늘같은 화초같은 경이는 산장 서가에 꽂힌「마리·로랭생」의 작은 화첩 속의「과시」그림으로 바뀐다.
손가락은 여전히
길고 투명한데
입술이 코 옆으로
빠져나가 웃고 있다
하늘아래 말 모양의 산, 천마산-. 사시인 내 눈은 그래서 겨울 풍경이, 슬픈 점 같은 붉은 입술도 모두 모두 얼비친다.<필자-시인>

<코스>
▲열차편=청량리역에서 춘천행을 타고 평내역 하차. 도보로(북쪽) 4km. 1시간30분 소요. 마석역에서 내릴 경우 5km. 2시간 소요.
▲「버스」편=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춘천행을 타고 마치고개(도보거리 3km· 1시간소요) 나 마석역에서 하차. 열차·「버스」편 모두 서울에서 당일 황복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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