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기율"내건 보수「엘리트」모임|서독에『대학생 조합』되살아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본=이근양 특파원】
기율(기율) 제일. 도서실에서 책을 읽다가도 선배가 들어서면 재빨리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한다.
후배는 낙엽이나 눈을 도맡아 치워야하고 식사 때는 선배 몫부터 날라야한다. 병영(병영)이나 무슨 전체주의적 조직이 아니다. 독일 대학가의 곳곳에 펼쳐 있는「대학생 조합」의 한 모습이다.
대학생들의「조합」이라면 우리에겐 좀 낯설지만 독일에선 5백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일종의 학생「클럽」이다. 2차대전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이 조합이 최근 전국에서 되살아나기 시작, 단위조합 1천2백여 개에 가입회원은 4만명을 넘는 등 일대「붐」을 이루고 있다. 이젠 자리가 없어 가입을 못할 정도다.
이들 대학생 조합은「자유·명예·조국」이란 「슬로건」이 나타내는 대로 보수파 「엘리트」의 모임이다. 회원들은 까다로운 규칙을 지켜야 하며 행사 때는 모자에서 구두에 이르기까지 각 조합 특유의 의상을 입는다.
조합은 각기 회관 건물을 하나씩 갖고 있다. 이 건물은 회원용 기숙사 구실을 하며 도서실·체육시설도 있다.
이런 시설을 유지하는 대는 회원들의 푼돈으로는 어림도 없다. 운영자금은 각 조합을 거쳐 졸업후 사회에 진출한 고참 회원들이「기부」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같은 졸업회원이 벌써 전국에 17만명이나 된다. 이들 돈 많은 선배덕분에 후배들은 월1백20「마르크」(약4만2천원) 정도면 조합회관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미국대학에서도 볼 수 있는「프래터너티」조직과도 비슷하지만 보다 복고적 성격이 강하다는게 특징.
철저한 평등 사상과 개인주의,「로큰롤」과 청바지가 판치는 대학사회 한 구석에 이같이 복고주의와 기율을 내세우고 결투를 통해 용기를 키우는 조직이 눈덩이처럼 세력을 키우고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지나친 개인화와 경쟁사회에 대한「독일적」반작용이라고나 할지.
보기에 따라선 고리타분하기도 할 이 대학생 조합이 그렇다고 전통을 무조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요즘의 회원 중엔 반 핵 주의자들 급진파도 있는가하면 선후배 규율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심심치않게 들리는 등 새바람도 적지 않다. 이 역시「전통」과「진보」를 다같이 원한다는 독일 대학생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