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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욕」 북돋는 일이 급선무”-「경제난국 극복의 처방」을 알아본다-연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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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들 한다. 경제가 어느 정도 어려우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또 현재의 경제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새해는 좀 나아질 것인가. 이에 대해 경제정책의 사령탑인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경제계의 원로인 김용완 전경련 명예회장,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서울대 조순 교수(경박)을 모시고 정담으로 들어본다. <편집자주>
▲조순 교수=급속한 성장을 자랑하던 우리 경제가 지난 한해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참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물가만 해도 40%이상이 올랐는데 재고가 계속 쌓이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었고 수입을 많이 줄이고 있는데도 국제수지는 여전히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요. 말하자면 나라 경제의 기본 「바로 미터」라고 할 수 있는 성장·고용·물가·국제수지 어느 것 하나 마음놓을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다행이겠으나 그 동안의 잘못이 쌓여온 구조적인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79년부터 정부도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지양하고 체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왔읍니다만 아직 두드러진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읍니다.
더우기 안타까운 점은 풀어 나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이를 위한 정책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먼저 부총리께서는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를 어떻게 인식하시는지요.

<5% 성장 어렵지 않다>
▲신병현부총리=어렵다는 데는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극복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80년 한햇 동안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겹쳤읍니까.
예기치 않았던 정치적·사회적 불안사태를 비롯해서 석유파동·흉작 등 한해에 한가지만 터져도 견뎌내기 힘든 충격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 터져버렸으니 경제가 온전하길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것입니다.
아무리 비관론자라고 해도 이 같은 충격들이 81년에도 또 다시 일어난다고 보지는 않겠지요. 작년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올해 5%정도의 성장은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봅니다. 5%의 성장을 한다해도 79년도 경제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지요.
역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81년 경제는 더 이상 나빠질 소지가 없다는 점에서 일단 지난해보다는 나아질 것입니다.
다행히 지난해 10월부터 수출신용장이 늘고 있고 재고도 감소현상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하루빨리 되살려내는 일인데 정부도 이 점에 각별히 신경을 쓰곤 있읍니다.
특히 기업의 속성이 어떻게 해서라도·이윤을 남기고 기업을 키워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돈벌 수 있는 가능성만 보이면 언제라도 우리 기업들이 활기를 되찾고 투자를 시작하리라고 낙관합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뿌리깊은 상호불신풍조예요. 아무리 정부가 부인을 해도 화폐개혁이니 사채동결이니 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도는데 저는 이렇게도 불신이 깊어졌나하고 새삼 놀랐어요.
김 회장도 나오셨으니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다짐을 드리지요. 기업들도 절대 그러한 무리한 시책을 안 한다는 정부 의도를 납득하면 자연히 투자의욕이 생겨나리라고 기대합니다. 믿어 주십시오.
▲김용완 회장=먼저 믿도록 하십시오.(일동 웃음). 부총리 말씀대로 저도 일단은 올해 경제에 관해 낙관하고 있읍니다. 기업들도 그 동안의 불황 속에서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었읍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바이탤리티」를 지니고 있다고 봐요.
다만 객관적으로 지금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제l차 「오일·쇼크」때보다도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워낙 벌여논일들이 많은 까닭에 너무 빚이 많아요.
만성병이 되기 전에 빨리 진단을 내리고 조기치료로 더 이상의 악화를 막아야 합니다. 병도 체력이 있을때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협조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해요. 세계가 온통 불황인데 유독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일본이나 대만을 보세요.
어려운 때일 수록 관민의 협조, 노사간의 협조, 동업자간의 협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조가 잘 되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불황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난국의 본질부터 파악>
▲조=우리 경제가 긴 안목으로 봐서 여전히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데는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단순히 정치적인 불안이나 「오일·쇼크」 또는 이상 기온에 따른 흉작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파악하는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였는데 올해는 5%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니까 안심해도 좋다는 식은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숫자로 표시되는 성장률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낙관 또는 비관할 일이 아니라, 당면하고 있는 경제난국의 본질을 보다 확실하게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줄곧 강조해마지 않았던 성장이니 근대화니 하는 말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데서 근본적으로 이런 난국을 빚은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서 손떼면 더 곤란>
가령 농사를 지을때 속성으로 키우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근본적으로 퇴비를 많이 써서 지력을 높일 생각은 않고 비료만 자꾸 준다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현재의 난국타개는 원천적인 기반을 바로잡고 튼튼하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비록 올해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해도 종래의 경제체질·운영방식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진정한 우리의 능력은 잠재되어 있으면서도 개발되기는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신=사실 물가 오른 것을 기름 값에만 핑계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우리 물가는 40% 올랐는데 「싱가포르」는 6%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경제는 반성할 점이 많다고 봅니다.
물론 「싱가포르」와는 달리 GNP의 6%이상을 국방비에 투입해야 하는 큰 제약이 있긴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우리 경제가 「싱가포르」경제보다 비능률적인 요인을 많이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 그 나라의 국시부터가 상업주의입니다. 모든 것이 경제원리에 입각해서 움직이고 있어요. 농산물만해도 완전히 수입을 개방해서 세계 어디서든지 가장 싼 것을 들여다 먹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비하면 우리의 가격지지정책도 일종의 비능률 요인이지요.
또 그 동안의 산업정책에 있어서 정부가 일일이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식의 과잉주도도 역시 비능률을 초래한 면이 있었습니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민간주도 경제의 주창도 비능률적인 요인을 없애고 능률화의 길을 걷자는 노력과 맥을 같이하는 일입니다.
늘 입버릇처럼 강조해오는 국제경쟁력의 강화도 결국은 기업들의 창의성에 기대하는 것이 가장 능률적이고 그것은 곧 기업간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지겠지요.
그러나 무슨 일이고 서둘면 부작용이 크니까 서서히 추진해 나갈 작정입니다.
▲김=부총리께서 기업의 창의성을 그처럼 높이 평가 해주시니 무엇보다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너무 지쳐있어요. 의기소침해 있는 기업들에 일단은 정부가 활기를 넣어주는 적절한 시책이 강구되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대만엘 갔더니 공휴일에도 공무원들이 출근해서 기업들의 애로를 타개해주는가 하면 불황일수록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정책기조였읍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자연 정부를 믿고 따르고 은행저축은 계속 늘어나고, 바로 이러한 분위기가 불황을 극복해 나가는 저력이 아닌가 해요.
▲신=정부로서도 새해 경제를 맞으면서 가장 시급한 일이 경기회복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전반적인 경기가 80년 연말까지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가 서서히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읍니다만 끌어올리는 일은 역시 정부책임이겠지요.
예컨대 보통 4∼5월이 되어야 시작되었던 정부 공사도 이번에는 준비를 서둘러 1월부터 시작하려합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적자재정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놓고 지난번 입법회의에서 왜 건전 재정을 안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20년만의 불황에 닥쳤으면서도 고식적으로 건전 재정만을 고집할 수는 없지요. 오히려 적자재정을 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다만 기우일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만 경기회복 과정에서 지나친 과열이나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읍니다.

<농수산부문 너무 소홀>
▲조=경제의 민간주도 이야기가 나왔읍니다만 80년대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도맡아 해오던 것을 민간주도 경제를 하니까 이제부터는 나몰라라고 손떼겠다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해요.
아무리 민간주도를 한다해도 산업의 기본방향을 제시해주고 「리드」해 나가는 기능은 정부가 맡아야지요.
그러나 이러한 일 마저도 정부가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해 가는 그런 「스타일」이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일본이나 대만의 경우를 보세요. 겉으로는 기업들에다 맡겨 놓은 것 같으면서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기본 의도대로 유도해갑니다.
▲김=민간주도 경제가 어디 별겁니까. 사람들의 의욕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니겠어요. 결국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지요.
기술개발만 해도 정부가 하는 것보다도 매일매일 문제에 부닥치는 기업들의 창의력을 통해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민간주도형도 우리 실정에 맞아야지요. 정부와 기업이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입장을 살려서 관민이 손을 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 동안은 정부가 그저 「하면 된다」는 식의 너무 일방적인 「드라이브」를 걸어왔고 기업들도 앞뒤 생각 안하고 여기에 뛰어들고 본 결과가 되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민간주도로 꼭 돼나가야겠지만 이것 마저 『정부가 한다고 했으니 해낸다』식의 또 한 차례 관 일변도적 시행착오가 안되길 바랍니다.
▲조=아무리 훌륭한 정부라도 정책의 일관성 없이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80년의 각종 경제정책은 음미해 볼 점이 많다고 봅니다. 몇 차례 소동을 치렀던 중화학공업 조정은 과연 일관성이 있었는지, 수입 자유화를 시도했던 결과 원래 의도대로 된건지, 물가 자극을 감수하면서까지 올렸던 환율정책의 공과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추진하고 있는 민간주도형 경제가 과연 기업의 자유경쟁과 창의·의욕을 높이고 있는지 등에 대해선 깊은 검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중한 검토 없이 그저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덤벼들면 또 다시 시행착오만 되풀이되고 국민들로부터 불신감만 유발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어요.

<회생될 가능성은 있다>
또 우리가 흔히 제조업이니 기업들만 대상으로 경제를 논하는데 농수산 부문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요. 공장이 돌아가는데 생산요소를 제공해주고 시장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농촌인데 필요할 때만 말로만 중농이지 실제로 지금까지 농업부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흉년의 고통도 날씨 탓 뿐 아니라 하늘만 쳐다보고 해온 농정의 안이한 자세나 그 동안의 보잘것없는 투자결과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신=아무튼 81년의 경제는 80년보다는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봅니다. 환율도 현재 실효환율 기준으로 따져서 78년 수준에 가 있으므로 더 이상 안 올려도 수출은 활기를 되찾을 거예요.
쌀이 큰 문젠데 어떻게 해서라도 수입미로 메워 쌀값을 안정시키겠읍니다. 결코 생활이 향상되길 기대할 순 없지만 모두가 합심하면 참을 만은 하다, 그리고 81년만 참아 나가면 회생의 실마리가 찾아질 것으로 믿고 있어요.
공무원 봉급도 81년 역시 10%밖에 못 올려 줄텐데 어떡합니까. 공무원들로부터 희생을 감수하고 허리띠를 죄는 수 밖에.
▲김=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이 흑자를 기록했어요. 세계적인 불황 속에 말로는 큰일났다고 하면서도 더 절약하고 줄여서 실속은 더 챙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느 때 연말 같으면 제법 흥청거릴만한데도 저녁거리엔 사람들이 없어요. 실질 소득이 줄어들 것을 대비해서 소비는 더 철저하게 줄이는, 말하자면 불황기일수록 저축을 더 많이 하는 일본인 특유의 저력이라고 하겠지요.
▲조=결국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대는 범 국민적인 「컨센서스」가 최대 관건이라는 결론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신뢰와 협조를 얻으려면 정부도 허심탄회하게 알릴 것은 알리는 보다 적극적인 「오픈·폴리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우리 경제를 버티고 있는 가장 큰 저력은 서민층의 생활태도가 건전하다는 사실입니다.
서민들을 믿고 이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정책을 펴나간다면 극복 안될 난관은 없지 않겠습니까. <기록=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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