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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티파니 사업' … 액체폭탄 우려 물티슈 경계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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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란치스코 교황을 태운 알리탈리아항공 에어버스 330 전세기가 한국 영공에 들어선 14일 오전 9시45분. 서해 상공에서 ‘에어 패트롤 (초계 비행)’ 임무를 수행하던 공군 최신예 F-15K 전투기 두 대가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교황 일행의 시선에 잡히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한 채 나란히 비행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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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와 몽골·중국을 거쳐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전세기는 국가원수급 공중경호를 받았다. 경기도 오산의 공군중앙방공통제소(MCRC)는 한반도와 주변 지역 모든 항공 궤적을 추적하면서 F-15K와 실시간으로 교신했다.

특히 북한 쪽 전투기와 대공 미사일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 7공군과 U-2 정찰기 등의 도움도 받았다. 한·미 공조를 통한 교황 경호였다. 전날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을 이륙해 9545㎞를 날아온 전세기는 영공 진입 30분 만인 10시15분 성남 서울공항에 내려앉았다. ‘셰퍼드 원(Shepherd One, 교황 전세기의 별칭)’이 탈없이 활주로에 내리자 군 관계자들은 안도했다.

교황이 방한하면서 국가정보원과 경찰·군, 청와대 경호실이 말 그대로 철통 경호에 나섰다. 한국에 머물 98시간15분(4박5일) 동안 교황을 지킬 작전은 코드명 ‘티파니 사업’이다. 이탈리아의 해안도시 이름에서 따왔다. 방탄차와 차단유리판을 쓰지 않는 데다 수시로 예정 동선을 벗어나 시민들과 접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에 경호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국정원은 13일부터 서울은 물론 대전·충남 등 교황이 방문할 지역의 테러 경보를 ‘경계’로 강화했다. 이는 테러가 임박했거나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 때 내리는 최고 단계인 ‘심각’의 바로 아래 단계다. 지난 11일부터 평시의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던 것을 다시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교황이 도착한 서울공항에는 공군 제15혼성비행단 소속 장갑차와 무장병력이 배치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활주로까지 영접을 나온 터라 긴장감은 더했다. 오후 교황의 청와대 예방 때는 시청·광화문 일대에 비상이 걸렸다. 연도에 경찰병력이 깔렸고, 고층빌딩의 5층마다 대형 숫자판이 창문에 나붙었다. 비상상황이 감지되면 몇 층에서 벌어진 상황인지 즉각 파악하기 위한 조치다.

 하이라이트는 16일 오전 10시에 열릴 시복(諡福)미사다. 대규모 군중이 운집하는 데다 교황이 광장에 완전히 노출돼 장시간 머물기 때문이다.

당국은 차량을 완전히 통제하고, 지하철도 무정차 통과하도록 조치했다. 직선 길이 약 1.82㎞ 구간에는 높이 90㎝의 방호벽도 설치된다. 서울 광화문의 KT사옥과 정부서울청사·동화면세점 등 고층빌딩은 출입이 사실상 차단되며, 경호·안전요원들이 주둔한다. 옥상 출입도 봉쇄됐으며, 망원렌즈를 갖춘 저격수들을 촘촘히 배치했다. 경찰은 이미 총기 6만여 정을 임시영치(안전을 위해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를 경찰서에 보관토록 하는 것)했다.

시복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는 100만여 명의 인파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천주교와 서울시는 화장실 대책도 마련했다. 행사장인 광화문광장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여성 방문객들의 불편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주최 측은 행사장 안에 이동화장실 80개를 설치하기로 했다. 또 서울시청과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한 광화문 주변 29개 건물의 화장실도 건물주들의 협조를 구해 개방하기로 했다.

 교황 경호를 위해 서울 외곽에서부터 3단계 대공방어망도 설정됐다. 주요 산봉우리와 고층빌딩 옥상에 설치된 벌컨 등 대공포는 하늘을 방어한다. 한강 교량에는 무장헌병이 배치되고, 수중침투에 대비한 경계대책도 세워졌다. 경호 관계자는 “교황이 체류하는 닷새간 ‘코드원’(대통령을 의미하는 암호)이 교황으로 바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국가 대(對) 테러활동의 최고지휘부인 국정원에는 일찌감치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교황 방문이 결정된 지난 3월 전 세계 정보채널을 가동해 70여 개 국제 테러단체와 범죄조직, 4000여 명의 테러 위험인물을 추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피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이후엔 해외 반(反) 가톨릭 단체와 위험인물의 국내 잠입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등과도 테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물티슈 경계령’도 내렸다. 알카에다를 비롯한 국제 테러조직이 물티슈에 액체폭약을 흡수시켜 폭탄으로 활용하는 신종 수법을 쓰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정원 대테러 파트는 행사장에서 검문할 때나 항공기 탑승 검색 때 물티슈와 스마트폰, 노트북을 꼼꼼히 체크해 달라고 경찰과 관계 기관에 당부했다. 교황이 방문할 대전 월드컵경기장, 충남 해미 순교성지, 충북 음성 꽃동네 등의 경호도 국정원이 지원하고 있다. 또 1960년대 이후 발생한 교황에 대한 위해(危害) 기도 사례 13건을 정밀 분석해 경호실과 대응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경호작전의 핵심인 테러정보 수집과 해외기관 공조에서 국정원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정원으로선 지난달 이병기 신임 원장 체제가 출범한 뒤 맞는 첫 대형행사다.

 이영종 기자

◆액체폭약(liquid explosive)=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니트로메탄에 황산·질산·녹말 등을 혼합해 만드는 폭약이다. 제조와 휴대는 간단하지만 충격에 예민하고 장기간 보관이 어렵다. 1988년 KAL기 폭파사건 등 각종 테러에 이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은 항공기 탑승 시 액체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최근 알카에다 등의 테러조직들은 액체폭약을 천조각에 뿌려 이른바 ‘옷폭탄’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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