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으로 다듬는 원불교 「영산성지」(전남 영고아군 영촌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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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9개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에 감싸인 서해 바닷가 양산유곡의 원불교 영산성지가 성역화 됐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속명 박중빈)가 출생, 대각성도한곳인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마을-.
아직도 초가지붕이 간간이 보이는 두메산골 영촌은 이제 세계적인 「종교성지」로 부상하면서 하나의 관광명소가 돼 가고있다.
원불교 성지사업회가 총 7천여만원을 들여 지난 10일 완공한 영산성지의 중요 성역화 사업내용은 기념관건립과 소태산 대종사의 생가 복원 등이다.
지난 5월 착공해 7개월만에 완공한 소태산 기념관은 총 건평 82평의 단층「콘크리트」골조의 기와지붕에 벽면과 처마를「베이지」색으로 칠했다.
기와·「알루미늄·새시」등 거의 모든 자재를 서울에서 직접 구입, 운송 해다 썼다는 것.
원불교 원기65주년(81년 3월 26일)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이 기념관에는 앞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영정 및 유물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1891년 출생, 9세까지 살았던 생가는 오래 전 허물어져 없어지고 집터만 남아있던 것을 생존한 영촌마을 최복경옹(90)의 고증으로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안방·중방·곳간·외양간 등 초가 4간 겹집인 복원생가의 건평은 17평.

<총 7천만원 들여>
지붕은 대나무 조각으로 전면을 덮은 위에 갈대를 입혔고 서까래 앞으로 대나무 테를 넣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7세부터 이 생가의 서쪽 3km지점에 있는 삼밭재 마당 바위에 올라 구도를 시작했다.
또 그는 대나무를 꺾어 가지고 집 뒷산의 옥녀봉에 올라 떠다니는 구름을 잡아보겠다고 쫓아다니기도 했고 감을 가지고가 공양하면서 산신에게 자신의 의문을 풀기 위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26세까지 20년 동안의 구도고행 끝에 대각을 이루고 원불교를 개교한 영산성지에는 이번 성역화사업으로 복원된 생가 외에도 구간도실(현 영산원), 구도장(삼밭재 마당바위), 입정삼매지(선진포), 구인기도봉, 대각전, 방언답 등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제자교육과 기도장이었던 영산원은 원불교 교단자체의 유일한 교역자 양성기관.

<연차적으로 추진>
현재 남자 10명, 여자 50명이 수련중인 영산원은 2년의 중등과정이고 이 과정을 마치면 총부가 있는 이리 동산선원(3년)으로 가서 고등과정을 마친다.
1919년 간척지를 막아 조성한 4만8천여평의 논(방언답)은 지금도 원불교 영산사무소가 직접 경작, 교역자 양성수련자들과 근래세운 영산고등공민학교 교직원들의 식량을 자급한다.
가장 모범적인 신생 민족종교로 손꼽히는 원불교는 영산성지 성역화사업을 연차적으로 계속 추진, 세계적인 종교성지를 만든다는 목표아래 원대한 계획을 수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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