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11. 아나키스트의 이상과 좌절-허동현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아나키스트 정화암과 박열. 두 사람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힘-국가.법.감옥.사제(司祭).재산 등-이 사라진 세상을 꿈꾸었지요. 이 점에서 두 사람은 국가가 권력과 소유를 독점하는 사회를 꿈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랐습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이 두 사람과 다른 길을 걸었던 인물 중에, 민족기업가 유일한(柳一韓.1895~1971)과 민주주의 정치가 장면(張勉.1899~1966)의 삶과 꿈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소중한 희망의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과 박애의 세상을 만들려면, 지향의 좌우를 넘어 함께 생각하고 모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하면 계층.인종.남녀.좌우.국경을 넘어 나와 다른 존재인 타자와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 세상의 화두(話頭) 아닙니까?

그렇다면 1939년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한 유일한의 나눔 정신과,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꾸려나가는 산업체를 세우려 했던 아나키스트들의 꿈 사이에서 공통 분모를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국가와 민족을 넘어 '완전한 평등'이 구현되는 '사해동포주의 이상향'의 실현을 꿈꾼 장면에게서도 '폐쇄적인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를 극복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장면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세계는 나날이 좁아져 가고 모든 종족과 모든 국민 사이의 접촉은 더욱 친밀하게 되어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일치, 더 큰 협동체를 원하는 마음이 뚜렷이 눈에 띈다.

더욱 밀접한 일치와 참된 평등을 구하는 소망은 당연한 것이며 정당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형제라는 이 교회의 가르침은 피부의 색깔, 인종, 사회적 지위의 구별 없이 인격의 영원한 운명에 대하여 평등한 존엄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다."

정화암.박열.유일한 그리고 장면, 이 네 인물의 삶과 꿈에서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갈등과 분열, 지향과 세대의 장벽을 넘어 자유와 박애를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열과 그의 아내를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1880~1953)와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에 맞서 싸운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1913~2002)교수의 삶 역시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후세 다쓰지는 3.1운동을 맞아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하고, 1920년대 비타협 폭력노선 항일운동을 펼쳤던 의열단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의 정당성 옹호와 일제의 인권탄압에 맞서 싸웠습니다. 일본인이기를 부끄러워한 일본의 양심이었지요.

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던 이에나가 사부로는 1965년 일본 정부의 역사교과서 검정에 항의하는 소송을 제기한 이래 무려 32년 동안 과거사 왜곡을 막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해나간 깨인 지성이었습니다.

때문에 저 또한 선생님의 우려와 달리 우리의 독립운동을 도운 일본의 열린 지성들과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특히 얼마 전 일본 정부의 검인정을 통과한 왜곡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막아낸 일본 풀뿌리 시민사회의 성숙한 모습에서, 일본 시민들이 초국가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그리고 불행했던 한 시기 '역사의 기억'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과 밖에서 평등과 박애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 한 세기 전 실패의 역사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만 할까요? 그 첫걸음은 지향과 국경을 넘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과 더불어 살려는 열린 자세로 생각을 나누는, 즉 관용과 대화에서 시작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