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남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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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양에 가면 누구나 동상이 많다는데 놀란다. 그 중에서 많은 게「그리스도」를 안은 성모상이다.
어느 건축가가 성모상 6백10개를 살펴보았더니 그 중의 80%가 왼쪽가슴에「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조각들이었다.
어느 인류학자는 또 인종에 관계없이 80%의 어머니들은 어린애를 왼쪽가슴에 안는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 와도 관계가 없다. 여기서 나오는 당연한 결론은-.
왼쪽 가슴에는 심장이 들어 있다고 그것은 인체에서 가장 따스한 곳이다. 가장 포근하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린애를 안는데 여기보다 더 어울리는 곳도 없으리라. 자비로운 마음씨가 샘솟는 곳도 바로 여기다.
그런 가슴조차 이제는 메말랐는가, 식어 간 것인가.
어제부터 세모를 재촉하듯 자선남비가 거리에 나왔다.
그러나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여성은 드문 것 같다.
혹은 1백원을 남 비에 넣고「자선」이란 말을 듣기가 낮 뜨거워서 일게라고 선의로 풀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자선」처럼 악용되고 있는 말도 드물다.
어느「파티」에서 옆에 앉아 있던 귀부인이「앙드레·지드」에게 가난한 근로자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서 열띠게 말했다.
『그럼 당신은 하녀를 안 두고 계십니까』하고「지드」가 묻자『천만 에요. 하인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편물을 짜 줄 만한 여가를 어떻게 갖나요』하고 그 부인은 태연스레 대답했다.
이런 식의 자선은 돈이 없는 사람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위선을 위해 있을 뿐이다.
참다운 자선은 자기가 선을 베푼다고 뽐내는 마음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거지에게 동냥 주듯 하는 것만 자선일 수가 없다.
하녀를 두고「다이어」반지로 번쩍이는 손으로 비슷한 유한「마담」들과 미용 법을 얘기하며 자선「바자」에 내놓을 물건을 만들만큼 여유가 있다면 정말로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 이상의 자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가 없어서 자선을 못한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만 같다.
신문에 이름 석자가 나오는 자선이라면 몇십, 몇 백 만원이라도 선뜻 내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이런 자선가들에 눌려 혹시나 자선남비를 피하게 된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자선에는 따스한 마음씨가 앞서야 한다. 돈의 다과가 문제되는 게 아니다. 비록 가난은 해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자선남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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