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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노벨상'에 첫 여성 … "여학생들에게 수학 자신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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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상 첫 여성 필즈상 수상자와 첫 여성 시상자, 첫 여성 세계수학연맹(IMU) 회장이 한자리에 섰다.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ICM) 개막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맨 왼쪽)이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운데)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 미르자카니 오른쪽은 개막식 사회를 본 잉그리드 도브시 IMU 회장이다. [박종근 기자]

‘마리암 미르자카니’. 13일 서울 코엑스 세계수학자대회(ICM) 개막식장. 스크린에 마지막 필즈상 수상자 이름이 뜨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미르자카니(37)는 이란 출신의 여성 수학자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이 여성에게 돌아간 것은 처음이다. 78년 필즈상의 역사가 서울에서 바뀐 것이다.

 대회 개최국 국가원수가 상을 주는 전통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상을 했다. 필즈상 ‘시상자’가 여성인 것도 처음이었다. 박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필즈상 여성 수상자로 선정된 미르자카니 박사의 도전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축사했다. 사회를 본 국제수학연맹(IMU)의 첫 여성 회장 잉그리드 도브시 미국 듀크대 수학과 석좌교수도 개막식 후 기자회견에서 “(미르자카니가) 많은 여성의 롤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르자카니와 함께 필즈상을 받은 아르투르 아빌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석학연구원, 만줄 바르가바 미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마틴 헤어러 영국 워릭대 교수(왼쪽부터). [박종근 기자]

 미르자카니는 1977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94·95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2년 연속 금메달을 땄고, 특히 95년 대회에서는 만점을 받았다. 그는 이란의 명문 샤리프공대를 졸업한 뒤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88년 필즈상 수상자 커티스 맥멀린 하버드대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하학과 동역학계(dynamical systems)를 연구해 쌍곡기하학·복소해석학 등 수학의 여러 분야를 잇는 ‘학문적 다리’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르자카니는 “어릴 때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해 공부를 포기하려 한 적이 있다”며 “10대에게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요즘 많은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이 수학을 자신 없어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IMU는 이날 미르자카니와 함께 아르투르 아빌라(35)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석학연구원, 만줄 바르가바(40)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마틴 헤어러(39) 영국 워릭대 교수 등 총 4명에게 필즈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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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빌라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나 16세(95년)에 IMO 금메달을 땄고 21세에 브라질 국립 순수응용수학원(IMP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럽·미국 외 지역에서 공부한 학자가 필즈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61년 설립된 IMPA는 연령·학위와 무관하게 수학영재들에게 고급 수학을 가르친다. 아빌라는 IMO 금메달을 딴 다음 해(17세)에 IMPA에 들어가 석사과정 공부를 시작했다. 학위를 받는 데 필요한 대학 졸업장은 리우데자네이루대에서 따로 받았다.

 다른 두 수상자의 이력도 독특하다. 인도계인 바르가바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수학은 수학자인 어머니 등 가족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수학교과서는 다 비슷하다. 문제를 던져주고 로봇처럼 그냥 풀라고 한다. 학생들이 수학이 가진 ‘발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르가바는 2001년 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년 뒤 29세 나이로 모교 정교수가 됐다. 이 대학 역사상 두 번째로 젊은 나이였다.

 헤어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스위스 제네바대에서 수리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향숙 서울 ICM 조직위 부위원장(이화여대 수학과 교수)은 “역대 필즈상 수상자 가운데 물리학도 출신은 90년 수상자인 에드워드 위튼 미 프린스턴고등연구소(IAS) 교수 이래 두 번째”라고 말했다. 하지만 헤어러는 “논문 지도교수가 물리학과 겸 수학과 교수였다”며 “스스로를 순수한 수학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 시절 오디오 편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에서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수 있다.

 개막식에선 필즈상 외에 네반리나상(수리정보과학 분야)·가우스상(응용수학 분야)·천상(기하학 분야) 수상자도 발표됐다. 각각 수브하시 코트 미 뉴욕대 교수, 스탠리 오셔 미 UCLA대 교수, 필립 그리피스 미 프린스턴고등연구원 명예교수가 수상했다.

 ICM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학술대회다. 1897년 이래 4년마다 각국을 돌아가며 대회가 열려 ‘수학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서울 ICM에는 세계 120여 개국에서 5000여 명의 학자가 참가했다. 21일까지 필즈상 등 주요 상 수상자 강연(10회), 한국의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등 세계적 수학 석학들의 기조강연(21회), 분야별 초청강연(179회) 등이 이어진다. 수학 강연은 유료 등록자만 들을 수 있지만 바둑·전시 등 문화행사는 무료다.

글=김한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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