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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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상난동이 계속된다. 소설이 엊그제인데 날씨는 포근하기만 하다.
벌써 김장을 담근 주부들은 날씨가 추워지지 않아 걱정이다.
올해 무·배추 등의 작황은 괜찮은가보다. 한여름의 이상 저온에 따른 냉습해 때문에 전국의 농작물 피해가 이만저만아 아니지만 김장감만 온 형편이 다르다고
우리나라 생활문화의 특색으로 꼽을 수 있는 것 중에 김장을 빼놓을 수 없다. 김장은 한국인의 인정이며 풍미이기도 하다. 담는 과정에서부터 절묘한 맛에 이르기까지 김장은 바로 한국적인 문화의 특성을 그대로 노출한다.
매년 이때가 되면 도시한 가운데도「김장시장」이 곳곳에서는 것도 한국적 풍물이다. 가족은 물론 이웃까지 동원되는 푸짐한 일터가 어떤 가정의 마당에나 펼쳐지는 것도 한국적이다.
김치의 기원은『시경』에 나타난「저」에서 찾을 수 있다.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아 저장하도록 한 산미 가공 식품이다.
공자도 오이로 담근「저」를 곳 등을 찡그려 가며 먹기 시작해서 3년 후에 비로소 그 풍미를 터득했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헌상 처음으로 김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초의 『동국이상국집』에「가포륙영패」(지)라하여 물에 담근 채소를 설명한 대목이다.
중국의『거가필용』을 보면 고려시대 김치에는 마늘이나 생강 등 향신료를 풍성히 썼음을 알수 있다.
물론 김치의 기권은 이보다 앞선 것이었다. 삼국시대 이전 그러니까 1∼3세기 철기 시대로 추급해 올라갈 수 있다. 물론 그 김치는 오늘의 김치는 아닐테지만.
고려말엔 김장을「심적」, 김치를「심채」라 불렀으며 16세기에 들어와선 채소를 소금에 절여 두면 물기가 빠져 나와 소금물에 심적된다고 해서「팀채」로 부르다가「딤채」로 전화되었는데 이는「심채」의 뜻이다. 이 말은 다시 구개음화 하여 「짐채」가 되고 「김채」로 변했다가 다시「김치」로 된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불린다는 설명이다.
김치에 고추를 사용한건 18세기 무렵이었다. 17세기만 해도 김치의 향신료는 조피(초) 또는 겨자를 썼다. 인도산 향신료를 지금도 호초라 부른다.
호초를 찾아 나섰던 「콜롬부스」가 미대륙과 붉은 초인 고추를 발견한 뒤에 우리에게도 전래된 고추를 쓴 고추장과 김치가 등장했다. 젓갈을 쓴 김치가 나온 것은 19세기 초다.
요즘 산업화에 따라 김치 통조림이 생기고 공장 제조의 김치가 나들지만 집집마다 각기 다른 주부들의 대를 잇는 김치 맛이 어쩐지 더 정취가 있어 보인다.
미각도 세정에 따르게 마련이지만, 김치만은 어딘지 고집스러운 풍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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