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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김천 신음동「황금쇠전」|거간의 농간·노름판 사라졌지만 우시장의 옛정취 그대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4백 마리가 넘게 몰려든 소들이 엉덩이를 비벼대며 내뿜는 울음소리가 땅을 진동한다.
예나 이제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축은 소다. 농경에 사용되고 육류로 최상의 대접을 받는 소는 우리네 농가에선 토지 다음가는 재산이 된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나라의 관청에서「목우장」을 세워 소를 길렀고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씨받이 소를 길러 소의 개량과 증식에 힘을 썼다고 한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소를 팔고사는 것은 일종의 금융이었고 우시장은 전국 곳곳에서 발달했다.
경북 김천시 신음동 황금쇠전­. 전국 6백여개의 소시장 가운데 가장 오랜 개장익사와 가장 많은 거래두수(두수)를 가진 전통 깊은 소시장이다.「황금쇠전」의 이름은 지금의 신음동으로 옮기기전 황금동시절의 쇠전이름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있기 때문이다.
『회주, 월성우시장이 현대식 시설을 갖춘 최대 규모지요.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코스에 들어있어요. 하지만 옛날쇠전의 정취나 우리네 전통적 거래방식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곳은 우리 김천뿐입니다.』
김천축산업협동조합 김인대조합장은 횡성·강릉등 강원도 몇 곳과 청주·조치원등 충청도일부에서 실제 경매형식을 택하고 있지만 이곳 황금쇠전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쇠거간을 통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천쇠전의 쇠거간(소매매중개인)은 조합에 등록된 사람만도 1백여명이었다.
조합을 찾아 쇠거간중 최고참 한분을 소개해 달라하니 이구동성으로 정석삼노인(68)을 지적했다. 그는 30년째 이곳 쇠전을 주름잡는 해묵은 쇠거간이었다.
『소나 사람이나 인물 잡기는 딱 한가지구마. 소란 자슥도 눈알이 움푹하니 깊으며 성질 버린 자슥이고 툭불거켜 순티 순해야 제대로된 놈이고마.』
우노인의 오랜 경험에서 터득했다는 소를 보는 기초상식은 이러했다.
입이 짧고 넓어야 중고 배가 크되 처지지 않아야 되며 뿔이 뒤로 젖혀지거나 앞으로 굽지 않아야 되고 눈꼬리는 째지지 않아야 좋고 앞가슴은 환하게 열려야하며 털이 짧고 운기가 있으면서 부드럽고 궁둥이가 처지지 않고 얼굴이나 배 엉덩이에 흰점이 없어야하고 코에 잡색이 없어야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지 않는 소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눈에 이모든 장단점을 가려내려면 오랜 경험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고 정노인은 말한다.
『이소는 배도 크고 넓어 좋아 보이지만 쇠전들어 오기전 물먹인 놈이고마. 매어 놓은 자리에서 의젓하지 못하고 쉴새 없이 움직이는거 보머 딱 아는기라)
소주인의 험상궂은 눈쌀도 아랑곳 없이 정노인은 이리저리 다니며 소품평이 한창이다.
5일장인 김천쇠전의 하루 거래량은 4백여 두. 가을추수가 끝나고 나면 많을 땐 1천여 두가 출장탄다. 장이 서는 날이면 김능·상주·선산·구미·성주에서 쇠전으로 통하는 길은 새주인을 맞아야될 소들의 행렬이 새벽먼동이 틀때부터 길게 꼬리를 문다.
쇠전 말뚝에 묶인 소들은 이때부터 1백여명의 쇠거간들의 중개로 거래가 시작된다. 중개수수료는 황소·암소등 성우가 4천5백원, 14개월이 채못된 중소가 3천원, 송아지는 2천원이다. 이 가운데 20%가 쇠거간의 수당으로 나간다.
성우 한 마리의 매매를 성립시키면 9백원을 버는 셈이다.
소시장 만큼 부정탄 거래방법이 많은 곳도 없다. 중개인이 중개권을 사서 소 임자를 골탕먹이는「매기치기」, 소값을 깎는「후려치기」, 쇠전 밖에서 매매를 중개하는「벌중개」등이 대표적인 방법.
그도 역시 18년째 쇠거간을 한다는 이곳 김칠성노인 (60) 의 말이다. 일제때 쇠전문을 열어 지금까지 소시장의 간관같은 위치를 잡고있는 김천소시장은 부정탄 거래가 없기 때문에 타관의 소장수들한테도 그 신용을 인정 받는다는 것이다.
『소판은 노름판이라는 말이 있지만서도 우리 소시장엔 그 흔한 화루짝하나 찾을 수 없소.』
김노인은 소 1마리에 1∼2백만원의 현금이 오가는 만큼 쇠전근처엔 상습도박꾼들이 설치게 마련이지만 해방 전부터 노름방 없는 쇠전으로 또한 이곳은 이름나 있다고 한다.
낯선 새주인의 손에 고삐를 쥐어 그 많던 소들이 하나둘 떠난 하오 5시. 바지가랭이에 쇠똥이 범벅된 거간들이 하나 둘 쇠전 봉놋방에 모인다. 하루종일 고함쳐 쉰목을 막걸리 대포로 추기는 시간이다.
『온갖 짐승다있어도/모도모도 꾀만 피는데/이천지 무궁토록/살고살고 자꾸살아/천하백성 도와주고/평야평야너른들도/네몸아니면 뭐가되나/허허 이름이 소로구나.』
구성진 소타령 가락에 하루의 피로를 푸는 황금쇠전 쇠거간들의 얼굴엔 고속도로 주변이라 미관상 어디론가 옮겨야 한다는 쇠전운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김천〓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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