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민통의 가입신청|일 대표 도움 받아 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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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희 논설위원】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서독 사민당 당수 「빌리·브란트」와 「스칸디나비아」 사회당들이 주도하는 기구인데 사무국의 젊은 요원들은 한민통의 입장을 크게 동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철 대표는 일본 민사당의 지원을 받으면서 한민통은 국내기반이 없고 사회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정당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워 한민통 가입의 봉쇄작전을 폈다. 한국 사람들끼리의 그런 싸움에 일본의 사회당과 민사당 대표가 집행 위원회에서 박이 터져라고 격돌을 했다.
11일의 집행 위원회에서 한민통의 가입문제가 한국 대표단의 승리로 일단 매듭지어진 다음날 북괴 기자 5명이 나타났다. 그중 최승규라고 자기 소개를 한 사나이는 본 기자가 「유엔」본부나 「리마」의 비동맹 회의 또는 중동같은데서 만난 어떤 북괴 기자나 관리보다 여유만만하게 한국 기자들과 담소하고 담배까지 주고받아 오히려 이쪽을 놀라게 했다.
그것은 분명 어떤 연막 전술같이 보였다고 그들 다섯명 중에는 여자가 한사람 끼어 있었는데 키가 1백63㎝ 정도로 날씬하고 연분홍 「스웨터」에 무릎을 살짝 위까지 올라간 「스커트」검정「코트」차림에 짙은 화장을 하고 활발한 걸음으로 「로비」를 오락가락하면서 한국기자들을 만나면 상냥한 미소를 보내기까지 했다.
한국 기자들이 최승규라는 일행과 담소를 하고 있을 때 윤이상 한민통 대표(재 서독 작곡가)가 느릿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같은 한국인들이면서도 회의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삼파전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같이한 꼴이다.
그런 경우에 어울리는 농담이 빠질 수 없었다.
▲한국기자=저 사람이 윤이상이다.
▲북괴 기자=윤이상이 누군가.
▲한국기자=잘 알면서 시치미 떼긴가? 평양을 방문한 일이 있는 작곡가다.
▲북괴기자=아 그래요?
▲한국기자=아직 만나지 않았으면 한번 만나시지.
▲북괴 기자=만나게 되면 만나지.
▲한국기자=3자 회담이나 한번 합시다.
▲북괴기자=한번 조직합시다.
다음날인 12일 집행 위원회가 한민통의 가입을 최종적으로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고 「스페인」외무성은 한국 대사에게 『김영남은 입국시키지 않겠다. 그게 한국에 대한 우리의 최소의 협조』라고 다짐을 주었다.
그러나 김영남은 이미 전날 「바르셀로나」를 통해서 입국을 하고 난 뒤였다. 「스페인」 정부는 한국 대사관을 상대로 엉뚱한 속임수를 쓰고 있었다. 북괴 사람들은 「모스크바」에서 「빈」으로 가서 「바르셀로나」를 통해서 「마드리드」로 입국을 한 것인데 그것을 「스페인」 정부가 몰랐을 까닭이 없다.
대회가 개막되던 날 「밀리·브란트」서독 사민당수가 기조 연설에서 한국문제 김대중 문제에 언급하여 한민통과 북괴 사람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북괴 기자들은 연설하는 대표들의 사진을 남김없이 찍고 연설을 전부 녹음했다. 한국 기자들과 북괴 기자들은 서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카메라 전쟁』비슷한 것을 벌였다.
4명의 북괴 기자 중에서 우두머리는 김용순이라는 노동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영남은 부부장과 국제국장 강석주까지 데리고 온 셈인데 그것은 북괴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얼마나중시하고 한국을 고립시킬 절호의 기회로 판단한 징조가 아닌가 생각됐다.
그는 전날 「빌리·브란트」와도 만났는데 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빌리·브란트」는 본 기자에게 김영남이 찾아왔기에 만나기는 했는데 내용은 기억에도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번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대회에서 한국은 힘겨운 싸움을 했다. 그것은 한민통과 북괴라는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한 당은 64개이고 집권당은 16개나 된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한국이 사회주의, 또는 사회당이 이라는 말에 대한 본능적인 편견을 벗어나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를 잡는다면 한민통과 북괴의 연합전선을 맞아 싸운 대가는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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