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2)|제71회 경기80년|제일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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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제의 압제에 대한 민족적 항거였던 3·1운동을 겪은 일제는 민심을 수습·회유하려는 목적에서 표면적으로나마 문화통치를 표방했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사이또」(재등보)는「서정일신」을 부르짖고 갖가지 문화적 회유정책을 질시했다.
이에따라 교육에 있어서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 1919년 l2월 총독부는 고등보통학교의 교과내용의 일부를변경, 종래는 가르치지 않던 영어를 과목으로 했다. 또 이과를 박물·화학의 2 과목으로 분리 했으며 그때까지 단일 과목으로 돼있던 실업·법제·경제를 실업과 법경의 2과목으로 분리시켰다.
일제는 식민지통치 초기부터 조선인에게『시세와 민도에 맞게 함으로써 양선한 효과를 얻을수 있는 교육』을 실시한다는 미명하에 우리 중등교육에 있어 보업과를 특히 강조 했다. 그러나 일인을 상대로 한 중등교육 에서는「실업료 교육」이란 없었으므로 교육내용에 있어 민족차별이며 조선인의 우민화 정책 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때문에 일제의 교육내용 변경조치는 이런 불만을 다소라도 해소 시키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우리국민들의 교육적 차별에 대한 불만이 가라않지는 않았다. 이에일제는 20년 임시교육조사위를 구성해 종래의 학제를 검토 한끝에 그해 11월 기존 교육령의 일부를 고쳐 고보는 종전의 4년제를 유지하되 1년 및 2년의 보습과를 설치, 1년을 마치면 일본의 고교 응시자격을, 그리고 2년을 마치면 전문학교 응시자격을 갖도록 했다.
또 남녀 고등보통학교 충절을 요구하는 우리 국민의 빗발치는 여론을 누를수 없어 관립고보를 장래는 1도1교로 설치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우선 급한대로 서울과 평양에 각1개씩을 신설했다.
이때 서울에 신설된 학교는 제2고보라고 멱명 됐는뎨 현재 경고고의 전신이다.
그러나 차별교육을 없앤다는 취지의 교육령 개정은 그해말에 완전 허구임이 드러났다. 기년말 본과 4년에 이어 보습과 1년을 마친 학생들이 일본의 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냈으나 현지의 학교들이「자격미달」을 이유로 원서를 모두 되돌려 보내왔던 것이다.
원서반환의 소식을 들은 제1고보 학생들은 크게 분개해 보습과와 본과 4년생들이 주동이 돼 동맹휴학을 단행, 일제의 기만적 교육정책을 규탄했다.
당시 제일고보의 교장은 전해 6월「오까」교장의 후임으로 부임한「가또」(가등상차낭)였는데 그도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해 총독부 당국에 이의 시정을 촉구하는 선봉에 나섰다.
「가또」교장은 맹휴중인 학생들을 비상 소집시켜 모은 자리에서『나도 학생제군과 더불어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최후까지 투쟁할 각오』임을 밝히면서『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사이또」총독이 표방한 문화정책에도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단계에 이르러,「사이또」총독 자신이 동경으로 가서 이문제를 협의 한다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타일렀다.
과연「가또」교장의 말대르「사이또」총독은 동경으로 갔고, 그가 간지 4,5일 후에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보습과 졸업생은 일본의 중학교 졸업자와 동등하게 인정하되 금년도 졸업생에 한하여 이미 입학 원서제출기한이 넘은 고등학교에서도 원서를 접수하게 됨으르써 일제의 차별교육시점을 요구한 제1고보의 첫 동맹휴학은 일단 수습되기에 이르렀다.
제일고보의 동행휴학 사건은 졸업생들에게 일본의 상급학교 진학의 길을 터 주는데만 그 의의가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의의는 표면적으로는 한·일 양민족간에 차별교육을 없앤다고 했지만 실제시행에 있어서는 극히 미온적이던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에 철퇴를 가했다는 의미가 컸다.
총독부는 이에 교육령의 전면 개정을 서둘러 22년2월 신돈육령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취지를 설명하는 성명서에서『차별교육의 철폐를 기하고 일본과 동일한 제도로 조선의 교육을 바꿀 것』이나,『일본어 상용여부에 따라 일어를 상용 하는자는 소학교·중학교 (또는 고등여학교)에, 그렇지않은 자는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모는 여자고보)에 입학함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이들 학교들이 서로 명칭은 달라도 같은 내용의 교육을 실시하며 입학자격·수업연한·교과과정, 그리고·상급학교 진학자격에 있어서는 동일하도록』했다.
이에따라 제1고보는 22년4월부터 종래의 4년제에서 5년제 고등보통 학교로 새로발족 하고 동시에 보습료는 재적학생의 졸업과 함께 페지키로 했다.
또 이때까지 제일고보에 부설 운영되던 임시교원 양성소를 폐지하고 그 부속 보통학교는 경성사범으로 옮김으로써 제일고보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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