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인방의 죄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중국대륙에는 갱유곡(갱유곡)이라는 곳이 있다. 옛 진나라 도읍, 함양교외 지금의 성서성 임황현 서남쪽.
시황제는 이곳에서 저생 4백60여명을 산재로 묻어 버렸었다. 이들의 정치비평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다. 생매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형벌로서 이런 일을 한 것은 진시황이 역사상 처음이었다.『사기』(사마천) 에 따르면 항우는 진의 포로 20만명을 역시 생매장했었다.
진도 함양에 진군하면서 그는 포로들의 반란이 두려워 수유 절벽의 낭떠러지에서 뒤로 밀어 붙여 이들을 몰살시킨 것이다.
어느 경우나 모두 기원전 2백여년전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시대는 바뀌어 그후 2천년이나 지난 오늘의 중국대륙에서도 여전히 그런 참담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66년부터 10년 동안「문화 혁명」이라는 이름의「천하대란」시대에 무려 3만4천여명이 정치범의 죄명을 쓰고 희생되었다고 한다.
재판도 없이 붉은 기를 휘두르는 청소년의 문혁 대원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무렵에 박해를 받은 사람의 수만해도 50만명이나 된다.
하긴 공산치하에선 벌써 그 사슬속에 산다는 것 자체가 박해이며 고통이긴 하다.
아뭏든 최근 재판정에 서게 된 사인방의 기소상에서 이와같은 정보들이 비로소 이들의 죄목으로 밝혀졌다. 정치적 과장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실 그 자체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더구나 노령의 모택동을 둘러싸고 바로 그의 첩인 강청까지도 연계된 중공의 권력 쟁탈「드라머」는 가히 전국시대의 정치 문호를 연상하게 만든다.
근년「캄보디아」의 대살륙을 보며 인류는 경악과 분노를 참지 못했었다. 역시 공산치하인 중공에서도 규모는 다르지만 똑같은 비극이 연출되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덕치」를 최상의 정치로 여겨왔다고 그것은 오랜 역사의 풍상속에서 터득한 도덕률이었지만 새삼 권력세계의 비정한 내막엔 전??을 느끼게 된다.
시대와 이념은 바뀌어도, 권력의 의식수준은 기원전의 그것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화염방사기·「바주카」포·특별열차·비행기가 동원되는 무대의 장치가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에 공산세계 특유의 비인간적인 냉혈이 더욱 그 비극을 교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덕치를 외친 공자가 중공에 의해 복권된 것은 더욱「아이러니컬」하다.
공자의 덕치 사상이 오늘의 중공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북경에서 벌어질 사인방의 재판은 가히 세기적인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